사회 사회일반

확산되는'정의 신드롬'…대중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다

EBS TV, 샌델교수 '하버드 특강' 심야시간 방영 불구 폭발적 반응<br>"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강의"<br>인문학 갈증 해소 장 마련 호평 기업 최고경영자들도 깊은 관심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정의 신드롬'이 서점에 이어 안방까지 뜨겁게 만들고 있다. EBS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 실황을 방영하면서 '정의 열풍'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고 있다.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정당한가? 연소득이 3,100만달러인 마이클 조던이나 수백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빌 게이츠 입장에서 보면 부당한 일일 수도 있다. 반면 최하위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재능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좋은 가정환경에서 온갖 혜택을 누려왔다는 이유로, 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과연 정의로운 분배 원칙이란 무엇일까?"(18일 '하버드 특강-정의' 방송 중 일부 내용) 지난해 서점가를 뜨겁게 달궜던 '정의 신드롬'이 새해 들어 TV로 옮아가면서 정의 열풍이 다시 불붙고 있다. EBS TV가 신년 기획으로 마련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하버드 특강 -정의'가 EBS 시청자 게시판은 물론 트위터 등에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의 열풍, 책과 방송 두마리 토끼를 잡다=흔히 따분하게 어렵게 여겨지는 철학 강의를 다양한 사례와 논쟁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가는 샌델 교수의 강의는 지난 20년간 하버드대 최고의 명강의로 꼽힌 명성에 걸맞게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 책의 원본인 강의 실황 영상이 책보다 훨씬 대중성을 띠고 있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 정의에 대한 논의가 공적 담론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월3일 첫 강좌는 자정 시간대에 배치됐음에도 불구 수도권 시청률 1.15%(전국 평균 0.90%,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를 기록해 평일 같은 시간대 시청률의 2배나 됐다. 첫 방송 직후부터 재방송과 방영 시간을 앞당겨 달라는 시청자 요구가 빗발치자 EBS는 방영 시간을 오후11시10분으로 50분 앞당기고 주말 재방송도 신설했다. 방송 이후 EBS 게시판이나 트위터 등에는 "노트 필기를 하면서 특강을 본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다" "적절한 논쟁을 유도하고 핵심 내용을 깨닫게 하는 인문학의 진수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등 수백건의 시청자 반응이 쏟아졌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권혁미 PD는 "방송을 통해 생생히 전달되는 강의의 현장성이 내용 자체의 매력과 어우러지며 시청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샌델 교수와 학생들 간의 긍정적인 상호 작용과 토론형 수업방식 역시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EBS는 '하버드 특강 정의'를 오는 2월 중에 DVD로도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출간 이래 수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다 11월에 2위로 떨어졌던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도 방송 특수에 힘입어 이번주 예스24ㆍ인터넷교보문고ㆍ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탈환, 77만부나 팔려나갔다. 책을 펴낸 김영사의 장재경 마케팅팀장은 "방송 후 하루 평균 판매 부수가 지난달보다 40%나 늘었다"면서 "방송이 나간다고 했을 때 (책 판매에) 영향이 있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 생생하게 해소=갈수록 복잡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정의와 도덕ㆍ평등ㆍ자유 등을 고민하는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라 할 수 있는 '정의'에 관한 수준 높은 강의를 집에서 TV로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되면서 지적 갈증과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의 열풍은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 기옥 금호건설 사장은 책이 출간되자마자 탐독하고 최근 방송 방영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기 사장은 "CEO 입장에서 정의라는 화두는 '성장'과 '분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끊임없는 고민과 갈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서민들의 피부에는 현실로 와닿지 않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의의 실체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이만 한화63시티 대표는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끊임없이 융합이 이뤄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변화에 따른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성이 대두된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인간의 양심이나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샌델 교수가 제시하는 정의론에 맞게 경영을 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책과 방송을 휩쓴 '정의 신드롬'은 공적 담론으로 확대되면서 대중이 주입식 사고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시청자들은 책으로는 충분히 느낄 수 없었던 샌델 교수의 자유로운 토론식 강의를 영상으로 보면서 공감하고 있다. EBS 시청자 게시판에 한 시청자는 "우리나라 교육은 거의 대부분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고 대학에서도 토론이나 질문을 하기 힘들다…. 몇백명을 모아놓고도 서로 소통하면서 수업을 이끌어가는 시스템, 이런 훌륭한 시스템을 공개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교수와 학교 시스템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청자도 "명강의의 공통점은 주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그동안 이성의 기능이 수동적인 측면에 머물렀다면 보다 다양한 영역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면서 담론의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며 "정의론 자체에 대한 담론을 공유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더 다양한 이슈들을 우리 스스로 창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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