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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취임 18개월만인 지난 2008년 7월 초 고국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했다. 반 총장이 UN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우리의 국가적 위상을 높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부심을 부여하는 한편 한반도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우리 외교사의 쾌거였다.
반 총장은 고국 방문 기간 동안 대통령을 예방하고 통일부장관 면담 등 공식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했지만, 국회 공식방문과 본회의 연설은 무산됐었다. 이때는 쇠고기 파동으로 국회가 반 총장을 맞아줄 국회의장조차 뽑지 못하는 파행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회의를 하고 의결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장 부의장 등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선출해야 하고, 각 상임위원회에 의원들을 배정해야한다. 이를 원구성(院構成)이라고 한다. 12대 국회까지는 집권여당이 다수당이었고,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점했었기 때문에 원구성이 야 협상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3대 국회 원구성 당시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의석확보에 실패하면서 이때부터 원구성 문제가 원내 교섭단체간의 협상대상이 되었다. 이후 국회의장은 다수당, 부의장 2명은 제 1당과 제 2당에게 배분하는 것이 관행화되었고, 상임위원장은 치열한 여야 협상대상이었지만 대체로 교섭단체별 의석비율에 따라 배정되었다. 또 상임위원장 가운데 운영위원장은 집권여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은 제1야당이 맡는 것도 17대 국회 때부터 관행이 되었다.
현재 원구성은 국회법에 구성을 마쳐야할 법정기한도 규정되어 있고, 국회의 관행도 있기 때문에 여야 협상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3대 국회이후 우리의 헌정사를 돌아보면, 원구성 협상이 다른 정치적 쟁점과 결부되면서 원구성의 지연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국회방문이 무산된 것은 18대국회 원구성 당시 이명박정부의 한미간 쇠고기 협정에 대해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 3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재협상 선언이 있을 때까지 국회등원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돼 원구성까지 소요된 기간은 88일간이다. 이 기간 동안 국회는 공백상태로 입법 및 행정부 감독이라는 국회의 본원적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고,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도 선출하지 못했다.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공백상태가 가장 길었던 것은 14대 국회 원구성 때로 125일이 걸렸다. 민정·통일민주·자민련이 민자당으로 합당한 이후 치러진 1992년 3월의 14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민자당은 65석이나 줄어든 149석(49.8%)만 얻어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은 20석이 늘어난 97석(32.4%)을 확보했고, 창당한지 2개월 밖에 안 된 국민당이 31석(10.4%)을 획득했다.
이러한 총선결과에 따라서 여야간에 정국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기 싸움이 펼쳐졌고, 정부 여당이 1992년 6월 실시하는 것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1995년으로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이것이 원구성 협상의 최대 정치쟁점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1992년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야당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를 관권선거 의도와 결부시키며, 이를 원구성 협상과 연계했다. 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 민자당이 무소속과 국민당의원을 대거 영입하면서 정치공작 논란도 일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이 탈당하고, 선거중립내각을 구성하면서 14대 국회는 원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
사상 최장기간이 소요된 원구성으로 지각 개원한 14대 국회는 이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이 고조되면서 국회법에 원구성 시기를 구체화하였다. 우리 국회의 원구성은 전후반기로 나누어 2년마다 하게 되어 있다. 이는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2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14대 국회는 전반기 국회의장단은 임기 개시 후 7일에 선출하도록 하고, 이로부터 2일 이내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도록 의무화 했다. 또 후반기 의장단은 전반기 의장단의 임기만료 전 5일, 상임위원장은 임기만료일까지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국회 원구성은 그때마다 다른 정치적 이슈와 결합되면서 국회법 규정상 법정기일이 지켜진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원구성 시기가 되면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국회에 대한 국민신뢰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19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도 40일이나 걸렸다. 상임위 증설, 상임위원장 배분, 이명박 정부의 측근비리 청문회 개최 등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연말 대선을 앞둔 기 싸움 성격이 강했다.
이제 19대 국회는 후반기 원 구성을 앞두고 있다. 의장단은 24일까지, 상임위원장은 29일까지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최근 국회는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회차원의 조치와 대책을 마련 중인데, 국정조사의 시기나 특별검사 임명 등의 사안은 여야 간에 의견차이가 존재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원구성은 소수당이 다수당과의 파워게임을 통한 정치적 성과를 얻기 위한 통로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차이가 원구성의 지연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원 구성은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입법 및 정책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마저 저버리면서 원구성을 지연시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 이번만큼은 원구성과 정치적 쟁점을 분리해서 법정기한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를 새로운 관행으로 정착해 나아가야 한다. 최근 여야간 입법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연계전략, 끼워팔기는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구태정치의 모습으로 지탄받았다. 새로운 원내사령탑이 된 두 원내대표들이 국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인천 남구갑)·정책위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