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7월 9일] 고슴도치와 여우의 게임

찐빵만 한 작은 몸집에 머리가 둔한 고슴도치와 빠른 두뇌회전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여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영국의 정치사상가인 이사야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여우가 큰 것 한가지를 알고 있는 고슴도치에 번번이 패한다’고 주장했다. 여우는 갖가지 방법으로 고슴도치를 처치하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고슴도치는 자신의 몸을 공처럼 움츠리고 가시를 돋게 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반면 여우는 고슴도치의 전략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이 같은 ‘고슴도치와 여우’의 게임을 빗대어 요즘의 국제 정세를 설명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북한이 고슴도치라면 한국과 미국ㆍ일본은 여우와 같다고 비유한 것이 꽤나 재미있다고 느꼈지만 국제적 외톨이인 북한이 우화 속의 고슴도치처럼 항상 승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커졌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를 보면 ‘북한=고슴도치’의 등식이 제법 그럴 듯 해보인다. 당장 이번주 개최되는 북핵 6자 수석대표회담만 봐도 북한은 회담 개최에 앞서 미국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성과를 우선 거뒀다. 핵 보고서 제출에 대한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른 조치라고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의 관측을 뛰어넘는 미국의 양보였다. 북한이 제출한 핵 보고서는 지난해 말이라는 시한을 넘긴데다 핵 무기에 대한 내용조차 빠져 있어 미국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고슴도치와 여우’의 게임에 비춰보면 미국이 치밀한 전략적 분석을 토대로 정치적 포위와 경제적 봉쇄라는 포위공격으로 북한을 완전히 굴복시키려 했지만 북한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날카로운 가시로 마침내 게임의 상대를 제풀에 지치게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우화는 어디까지나 우화일 뿐이다. 북한이 설사 ‘고슴도치 전략’으로 잠시 양보를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그들에게 영원한 승리일 수는 없다. 북한사회의 전면개방과 국제사회와의 협력 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방법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고슴도치 전략’은 더 이상 북한에 옳은 길이 아니다. 이제 8일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과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속속 베이징에 들어오면서 9개월간 표류하던 북핵 6자회담에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남북 간의 폭 넓은 대화로 다소 소원해진 남북관계가 복원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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