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구마 캐기·직업 체험이 봉사활동?

농촌 철도여행·벼룩시장 참가…적성 살리기 등<br>단순 프로그램이 청소년 봉사 시간으로 인정<br>순수한 취지 변질 우려… 전면 재점검 나서야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모(45)씨는 최근 아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벼룩시장에 참가했다. 쓰지 않는 물품을 내다판 뒤 판매금액의 일부를 기부하면 봉사활동 시간을 인증 받을 수 있어서다. 학교에서 규정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벼룩시장에 참가했던 김씨의 아이는 판매금액의 절반을 기부하고 봉사활동 인증서를 받았다. 김씨는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 좋았지만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받기에 적합한지는 모르겠다"며 "오히려 아이들이 봉사활동의 순수한 취지를 잘못 배우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주 5일제 수업으로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참여 대상이나 내용과 관계 없이 봉사활동 시간을 지급하는 프로그램도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코레일이 지난해 7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여행상품 '농촌을 품은 철도 레일그린'은 지난 4월 이용객이 1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다. 여행객들이 하루 농촌을 방문해 오이 따기나 고구마 캐기, 두부 만들기, 송아지에게 건초 주기 등에 참가하면 2~4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제공한다는 게 특징.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학생을 포함한 가족 단위 여행객이 주를 이룬다. 관련 여행센터 관계자는 "봉사활동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초ㆍ중ㆍ고교생 참여 비율이 다른 상품보다 몇 배나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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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프로그램에 봉사활동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지 없다는 점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기본 취지는 농촌경제 살리기이지 봉사활동은 아니다"라면서도 "쓰레기 줍기 등의 봉사활동 내용이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농촌기술센터 관계자는 "농촌 방문 체험 프로그램이라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여행객들은 봉사활동을 하지 않고도 상품당 2~4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진로직업 특기적성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매주 토요일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5주 동안 참가하면 20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봉사활동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사나 간호사, 사회복지사, 사육사, 변호사, 산악인, 조리사, 안무가,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보는 게 프로그램의 대부분이다. 프로그램 제목과 달리 실제 봉사와 관계된 활동이 거의 없는 셈이다. 프로그램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주로 4주는 교육을 받고 1주만 봉사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체험 프로그램에 단순 미화활동이나 캠페인 활동을 추가해 봉사활동 시간을 부여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인 공항철도의 '공항철도 체험 프로그램'은 철도안전관련 시청각 교육과 서울역 도심공항터미널 항공ㆍ보안ㆍ출국심사 체험, 인천국제공항 견학 등으로 구성돼 있다. 봉사활동과 무관해 보이는 프로그램이지만 철도안전교육 4시간과 역광장 미화활동 2시간을 봉사활동으로 인정해준다. 일부 소방서에서 운영 중인 '구급체험 봉사활동'도 심폐소생술 교육과 캠페인으로 이뤄져 있지만 2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제공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를 늘리기 위해 봉사활동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교육적 차원에서 무책임한 행위"라며 "각급 학교에서 인정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대해 재점검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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