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동개혁 선진국에서 배운다] 임금인상 자제-고용창출 '네덜란드 대타협' 30년째 이어져

<3>네덜란드병 이겨낸 폴더 모델



노사정 '바세나르 협약' 통해 일자리 나누기

1980년대 오일쇼크·고실업률 등 4중고 극복


1993년 신노선 협약 맺어 파트타임도 풀타임 대우

2013년엔 사회협약으로 유럽발 경제위기 탈출


"네덜란드 기적의 원동력은 '컨센서스(합의)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LG경제연구원이 연초 내놓은 네덜란드 성장 비결에 대한 분석보고서 내용이다. 컨센서스 경제는 정책 수립시 정부와 노사단체 대표 간에 사전 이견 조율이 제도화돼 있는 경제라는 것이 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이것이 세계 노동개혁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 '바세나르 협약(고용정책에 관한 일반 권고)'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정치 중심지인 헤이그에서 북동쪽으로 15㎞를 달리면 나타나는 부촌 지역 바세나르. 호화로운 주택과 울창한 나무로 덮인 이곳은 전통적으로 왕족과 귀족들이 거주하면서 '비벌리힐스'로도 불린다.

지난 1982년 11월 빔 콕 네덜란드노동조합총연맹(FNV) 위원장은 사용자 대표인 크리스 반 빈 경영인협회(VNO-NCW) 회장의 자택이 있는 바세나르로 달려갔다. 급증하는 실업자 문제를 풀겠다는 절박함을 갖고서다.

이 자리에서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경영계는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경제위기도 극복해 '폴더(간척지) 모델'이라는 명칭도 얻었다. 국토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아 네덜란드의 국민들이 합심해 간척지를 늘려가며 국토를 이룬 것처럼 노사정이 타협해 노동시장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10일 헤이그노동재단(FL) 사무실에서 만난 제니 무렌 사무총장은 "노사 협의기구인 FL과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사회경제협의회(SER)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데 그 기저에는 새로운 노동시장을 만들어낸다는 가치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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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네덜란드 경제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 속 세계경기침체,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초과하는 공공지출, 13%에 달하는 실업률, 파산 직전의 사회보장제도 등 4중고를 겪으며 심한 '네덜란드병'을 앓았다. 특히 전문기술학교 졸업생도 일자리를 얻지 못할 정도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협약 체결 후 빔 당시 위원장은 '노동자를 팔아먹은 배신자'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2년간 실질임금이 9% 줄어드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임금 동결이라는 고통 감내는 수출가격의 경쟁력을 회복시켰고 근로시간 단축과 직업훈련 등은 추가 고용창출로 이어졌다. 정부는 세금을 낮춰 기업 부담을 줄여줬다. 이는 1990년대 성장·물가·재정·고용 등 모든 면에서 유럽연합(EU) 평균 이상의 성과로 나타나면서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1991~1995년 당시 EU의 평균 성장률과 고용 증가율은 각각 1.5%와 -0.6%에 그쳤는데 네덜란드는 2.1%, 0.7%에 달했다. 카텔레네 파스히르 FNV 부위원장은 "바세나르 협약이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안정시킨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1993년 신노선(New Course) 협약을 맺고 다시 한 번 근로시간 단축(주 38시간→주 36시간)과 임금 인상 억제를 통한 위기 극복을 이뤄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파트타임 업무에 대해서도 풀타임과 같은 대우를 보장했다. 1996년에는 해고통지기간을 단축·간소화하면서도 기간제 근로는 최대 3년을 한도로 두 차례 갱신할 수 있는 '유연 안정성(flexicurity) 협약'을 맺었다. 기업 경영의 유연화와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동시에 모색한 것이다.

폴 이스케 마스트리흐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사람을 줄이는 것은 성장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을 갖고 위기에서도 많은 회사가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기업들이 훗날 더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한 바세나르 협약 정신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유럽발 경제위기 충격에 빠져 있던 2013년에는 노사가 자발적으로 '위기 극복과 2020년 목표를 향하여'라는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근간으로 작용했다. 합의의 주된 골자는 해고 관련 절차를 간소화해 효율성을 높이되 과도한 유연근로 사용과 파견·하도급에 대한 편법적인 유연화는 막는다는 내용이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달부터 새로운 해고 시스템이 가동돼 경영상의 이유는 사회보장국(UWV)을 통해, 개인적인 사유라면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단 이들 내용 모두 각 기관의 동의가 전제되도록 했다. 다른 일자리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전직수당도 나이, 직무, 급여 수준, 근무기간 등을 종합해 계산하도록 명확화했고 7만5,000유로나 연소득을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또 고용계약 후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최대 38개월에서 24개월로 축소했다. 무렌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위기로 해고할 때 법원으로 가지 않아도 돼 해고기간을 단축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물론 이 같은 2013년 합의에 대한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유럽 경기침체 속에서도 1·4분기 네덜란드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8% 늘었고 성장률도 2.5%로 비교적 탄탄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효율을 높여 또 다른 성장을 시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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