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기자본 놀이터 제공…기업 투자∙고용 ‘흔들, 소액주주 손실 우려에 중소기업에도 부작용
금융계“위기상황에 추가 위험부과”정부 “특정그룹 표적 정책”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이 11일 대기업집단의 계열사인 보험ㆍ증권ㆍ카드사에 대해 결국 의결권 제한과 자본적정성 규제를 동시 적용키로 한데 대해 대기업은 물론 정부와 금융시장, 심지어 중소기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토종 자본에는 재갈을 물리고 해외 투기자본에는 놀이터를 제공해 대기업의 경영권을 흔들고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우선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예상치 않은 손실에 노출되고 중소기업은 유탄을 맞아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는 천문학적 가계부채와 유럽 재정위기가 웅크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강화로 추가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선 정책이 특정그룹을 표적 삼아 수립되자 “실패가 뻔하지만 성공해도 문제”라는 자조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여당 경제민주화 모임이 금산분리 강화를 위해 도입키로 한 대기업집단의 보험∙증권∙카드사의 의결권 제한은 같은 그룹에 소속된 제조업 계열사 지분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예를들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7.5%(2012년 8월 기준) 가량 보유 중인데 5%를 넘는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이 없어진다. 이와 함께 재벌 소속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자본적정성 규제로 건전성 평가시 불이익을 받는다. 삼성생명을 예로 들면 자본건전성 평가시 보유중인 삼성전자 지분은 적정가치보다 낮게 평가된다. 당초 모임은 금융계열사 보유 지분의 의결권 제한만 검토하다 자본적정성 규제를 추가해 금산분리를 훨씬 강화했다.
금융과 제조업 계열사를 함께 거느린 기업집단이 이 같은 족쇄를 벗어나려면 실천모임이 도입을 천명한 중간지주사를 설립해야 한다. 하지만 지주사 체제가 대기업 지배구조의 모범답안이 아니라는 주장이 날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한화∙롯데∙동부∙태광∙동양 등은 수조원의 비용 때문에 지주사 체제 전환마저도 현실적 제약이 큰 처지다.
대기업 입장에선 금산분리 강화에 따른 족쇄에 묶이든 지주사 전환을 하든 날로 악화되는 기업 경영 환경에서 본연의 투자 및 고용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완전 개방된 금융시장에서 해외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줘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이 커질 수 밖에 없다. 2002년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의결권 금지를 임원 선임이나 사업변경 등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해제하고 현재 15%까지 의결권을 인정한 것도 이 같은 문제 때문이었다.
정중원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은 ‘대기업집단 보험∙증권사의 계열사 지분 의결권 제한’에 대해 “삼성전자 등 국내 상장사 일부는 적대적M&A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2003년 해외 투기자본인 소버린이 SK그룹에 대해 적대적M&A를 시도하며 조 단위의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악몽이 삼성그룹 등에도 재연될 수 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금산분리 강화 과정에서 특정기업의 주가가 폭락해 소액주주들이 커다란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영권방어에 대기업집단이 몰두하게 되면 신규 투자여력이 급감해 수천개의 협력사 등 중소기업들도 도미노 피해를 입게 된다.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은 "급격한 금산분리 강화 등은 대기업의 투자나 고용을 위축시킬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상당한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휘청이는 금융산업의 회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금융산업에 추가 부담을 주며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도 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측면은 외면하고 구조조정에만 나서다 금융업이 빈사상태에 빠질 수 있다” 며 “우리만 스스로 금융산업의 지배구조를 바꿔 추가부담을 주려는 건 경제에 매우 불안한 측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입법권이 특정 기업집단을 표적으로 하는 데 대해선 정부에서 우려가 크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료는 “순환출자금지는 현대차그룹을, 금산분리 강화는 삼성그룹을 겨냥하고 있는데 법률이나 정책이 특정 집단을 견제하고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한다” 며 “우리 사회 누구나 비슷한 속박과 피해를 입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