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제협상과 조세주권/김중수 조세연구원장(시론)

경제의 글로벌화와 시장경제 체제로의 통합과정에서 각 국가마다 상이한 경제제도의 수렴 가능성 여부가 국제협상의 주요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가 필요하며 이의 달성을 위해 다자간 국제포럼에서 각 나라마다 상이한 경제 규제, 경쟁법 체계, 조세제도 등의 국제적 수렴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이 논의는 각 나라 특유의 다양한 규제나 제도는 결국 자원의 원활한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제도의 차이점을 축소시키는 것이 무역과 투자자유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기존의 규제나 제도를 국제규범에 상응토록 개정하는 데에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조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편, 국내 이익집단간 이해상충을 조정해야 하는 국내 세제개혁에 비하여 대외적 요인을 추가로 고려해야 하는 국제세제개혁은 국민정서적 저항마저 불러일으키게 된다. 조세권은 정부의 고유권한, 즉 조세주권이란 전통적 개념만으로서는 조세에 대한 국제협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최근 미국과의 자동차협상이나 EU와의 주세협상에서 우리나라의 관련세법 개정이 요구된 것에 대해 국민정서가 이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그러나 글로벌화하는 경제환경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주어진 여건으로 받아들이고 각 경제주체들이 국제조세 이슈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문제해결의 접근방법이다. 다국적기업이 세계교역량의 60%를 담당하는 글로벌 상황에서 내부적 요인만을 고려한 대응책은 실효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자간 국제포럼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가 조세경쟁(Tax Competition)이다. 폐쇄경제와는 달리 개방경제에서는 한 나라의 조세정책이 다른 나라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본시장 개방과 투자자유화가 진전될수록 이 효과는 더욱 심대하게 된다. 유동적 자본이나 서비스로부터의 소득에 대한 과세권 확보를 목적으로 각 나라간 세율인하 경쟁이 심화되고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모든 나라가 비유동적 요소인 토지나 소비에만 과세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자본뿐 아니라 고급기술인력의 이동마저 자유로워 이들의 세원확보조차 용이치 않게 되고 있다. OECD는 이미 세계통화 공급의 3분의1이 매년 조세피난처, 즉 조세제도가 불투명하고 조세행정을 완화하거나 비과세를 적용하는 등의 경과세국을 경유한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는 조세경쟁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결과로 보아야 한다. 국제적으로 수용가능하지 않은 소위 해로운 조세경쟁은 무역분야에서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비유되고 있다. 조세정책이나 제도의 혁신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동일한 관행을 유지할 경우 세계 경제운영에 폐해를 끼치는 경쟁을 의미한다. OECD에서는 다음의 세가지를 해로운 조세경쟁으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는 한 나라의 특혜조세제도가 탈세나 조세회피의 기회를 제공하여 다른 나라의 과세행위에 피해를 주는 경우고, 둘째는 한 나라가 고도로 유동적인 저축이나 금융상품에 저세율을 과세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자본을 유인하는 파급효과를 유발하는 경우며, 셋째는 관세나 보조금이 무역과 투자자유화의 장애요인이 되는 것과 같이 조세특혜제도가 자원배분의 비효율을 야기하는 경우다. 이러한 문제들을 폐해를 창출한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교정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 당사국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누릴 것이며 또한 주권의 문제로 여기면서 문제해결에 비협조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자간의 조세협약을 통하여 특혜조항을 제한시킴으로써 세제조화(Tax Harmonization), 즉 과세상의 이유로 재화·서비스·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저해를 받지 않는 체제를 형성하여 나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실제로 이 문제야말로 국제기구에서의 다자간 정책협력과 조정노력없이는 성취될 수 없기에 향후 국제포럼에서 주요의제로 계속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정부 및 경제주체들도 글로벌화하는 경제에서는 우리의 어떠한 경제제도도 국제적 수렴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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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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