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SW인력 5년내 30만명 못 키우면 신흥국에 따라잡힐 것



中·印 매년 수십만명 배출하는데 우리는 1만명에 그쳐

'소프트웨어=3D업종'이라는 잘못된 사회인식 바로잡고


외주용역 방식도 '인력수→사용자 얻는 가치' 전환 필요


"정보통신기술(ICT) 하드웨어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인도에서조차 매년 소프트웨어 인력이 몇 명이나 배출되는지 아십니까. 25만~30만명입니다. 중국도 매년 30만명의 관련 인력이 쏟아지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작 연간 1만명가량의 소프트웨어 인력이 공급됩니다. 5년 안에 적어도 30만명 이상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길러내지 못하면 조만간 신흥국가에 따라잡힐 겁니다." 서울 서초동 비트컴퓨터 본사에서 만난 조현정(57·사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양적·질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인력 실태를 되짚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도·중국 등 후발주자들이 최근 관련 인력을 집중 육성하고 있어 조만간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 경쟁력까지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1988년 63개 회원사로 출발한 조직이다. 현재 회원사가 1,204개사에 이른다. 비트컴퓨터 대표이기도 한 조 회장은 지난해 2월 취임했다.

그는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직종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인식과 잘못된 소프트웨어 발주 방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소프트웨어 일을 한다고 하면 흔히 3D 직종이라고 생각하는데 보수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고 일정 수준만 되면 업무량도 특별히 많은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외주용역 방식도 현재의 인력 수 기준보다는 사용자가 얻은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개별 기업의 전문성을 높이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 회장은 "스마트카 시대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 혁명을 몰고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초라한 소프트웨어 인재

그가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을 첫 화두로 꺼낸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현실이 초라해서다. 매년 30만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는 인도·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관련 학과를 졸업하는 사람이 매년 고작 3만여명에 불과한데다 그마저도 1만명은 하드웨어 업체로, 1만명은 영업·관리 등 전공과 무관한 곳으로 빠져나가 정작 제대로 된 인력 수급은 나머지 1만명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고급인력은 제조업의 생산라인 하나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며 "그동안 소프트웨어 인력 30만명 양성을 계속 주장해왔는데 우리의 주 경쟁상대인 인도·중국·미국과 비교해보면 이것도 적다"고 지적했다.

인력의 양적 부족뿐만 아니라 질적 저하 문제도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각 대학의 컴퓨터·소프트웨어 전공 입시 성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보니 대졸자의 능력이 업계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 조 회장은 그 이유를 "소프트웨어는 3D 직종이므로 피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인식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가장 참담한 것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소프트웨어 직종은 힘든 일이라며 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 정도면 회사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는데 처음부터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 들어오는데다 학교에서 학업도 열심히 하지 않다 보니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최근 정부의 소프트웨어 교육 강화 움직임에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초중고 소프트웨어 교육의 핵심은 기술적인 학습보다는 논리력 향상에 있다는 게 조 회장의 생각이다.

조 회장은 "현재 초중고 교과과정에서 논리력을 키울 수 있는 학문이 사실상 수학 빼고는 전혀 없다"며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수많은 에세이를 쓰면서 논리력을 향상시키고 있고 유럽은 소프트웨어 관련 교육을 우리보다 이미 먼저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정규교육을 곧바로 실시하기에는 전담교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것을 모두 따지기 시작하면 도대체 언제 시작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예전에는 전국의 대학에 컴퓨터 교육학과가 꽤 많았는데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비용산정 방식 바꿔야

조 회장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 외주용역부터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식 산업인데도 단순히 투입되는 인력 수로 비용을 산출하는 현 방식에서 탈피해 소프트웨어 그 자체의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과 달리 소프트웨어는 소수의 고급인력이 다수의 평범한 인력보다 훨씬 더 높은 생산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정부 외주용역 과제는 투입된 사람 대비 비용을 산정하는데 그렇다 보니 기업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인력만 다수 투입하는 부작용이 생긴다"며 "적은 인원이라도 고급인력을 사용하면 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데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렇게 아낀 비용을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데 쓸 수 있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이와 함께 정부 과제를 일관된 업체에 맡겨 전문성을 키워줘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소프트웨어도 각 분야마다 전문기업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중구난방으로 1년 미만 프로젝트만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과제 도출부터 개발·운용까지 한 회사가 맡아서 해야 노하우도 쌓이고 전문기업으로 인력 양성도 할 수 있어 종국에는 수출기업으로까지 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제도·정책에 대해서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며 안도했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소프트웨어 유지보수료율을 기존 8%에서 오는 2017년 15%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공공구매 평가기준에서도 기술평가 부문을 90%로 높이고 가격경쟁력 부문은 현재 10%까지 낮춰 소프트웨어 업체끼리의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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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수출에 있어서는 기업의 각개전투 방식보다 정부 중심의 일괄수출 방식이 훨씬 유리하다며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스마트카가 소프트웨어 산업 재편할 것

조 회장은 앞으로 수많은 소프트웨어 융합 산업 가운데 스마트카 산업이 세상을 바꾸는 중심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마트폰이 소프트웨어는 물론 기존 제조업을 한 차례 혁신·붕괴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두 번째 혁명은 10년 내로 스마트카가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이어 스마트카 산업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국가경쟁력도 완전히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처럼 소프트웨어 산업이 계속 지지부진할 경우 세계 무역규모 10위권 내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도 금방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곁들였다.

조 회장은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카메라·MP3플레이어 등 여러 전자기기 산업이 붕괴했듯이 스마트카가 앞으로 10년 뒤 대중화되면 우리나라의 무역규모도 지금처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제2 한강의 기적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지금 수준이라도 유지하려면 정부와 국민 모두 소프트웨어 인식 개선과 산업 육성에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우리나라의 경우 하드웨어 기술과 빠른 인터넷 속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물인터넷은 하드웨어와 인터넷 속도가 담보돼야 산업을 키울 수 있는데 우리는 다행히 둘 다 강한 편"이라며 "10년 전만 해도 관련 언급을 하면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였으나 지금은 기가 인터넷 시대가 열리니 시장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마지막으로 "소프트웨어도 심리"라는 말과 함께 소프트웨어 제값 주기 문화 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최근 우리가 유용하게 쓰는 서울버스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공공데이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버스회사·국민 누구도 개발자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비용을) 내는 놈만 바보'라는 심리가 만연한데 개발자가 신이 나야 더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He is…

△1957년 서울 △서울 용문고, 인하대 전자공학과 △1983년 비트컴퓨터 창업(대표이사 회장) △이화여대·인하대 겸임교수, 한양대 특임교수 △ 2001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2005년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 △2013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김범수·이해진보다 15년 앞선 '1호 벤처인'… 15년째 장학재단 운영

■ 조현정 회장은

조양준 기자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지난 1980년대에 벤처기업을 세웠다. 1983년 당시 대학 3학년이던 조 회장은 직원 2명과 서울의 한 호텔 객실에서 지금도 대표로 있는 비트컴퓨터를 만들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며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를 좌우하고 있는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보다 15년가량이 앞서는 명실상부 '1호 벤처인'인 것이다.

벤처라는 말도, 소프트웨어라는 말도 낯설던 시절, 조 회장은 창업 당시를 떠올리며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오늘에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하지 않았을 때여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변변한 '스펙'도, 네트워크도 없이 자본금 450만원으로 덜컥 시작한 회사는 올해 창립 31주년을 맞았다. 조 회장의 창업을 기점으로 2000년대 직전까지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1985년),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1989년), 안철수 안랩 창업자(1995년) 같은 굵직한 벤처 1세대가 줄줄이 등장했다.

1세대 벤처인으로 그는 한국의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0년에 만든 '조현정재단'은 15년째 학생지원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246명의 장학생이 연간 1억원이 넘는 지원을 받았다.

조 회장은 "단순히 돈만 주고 끝나는 기존의 장학재단과 달리 고등학교 2학년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대학교 2학년까지 4년 동안 장학금 지급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며 "훌륭한 인재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전을 잃는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벤처 1세대가 본 현실은 어떨까. 그는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해 최근 '스타트업(start-up)' 바람까지, 벤처 붐은 일정 주기를 두고 반복되고 있지만 벤처에 대한 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는 아직 과거의 '거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조 회장은 "2000년 한 해 동안 코스닥지수는 2,900선에서 500선까지 붕괴되며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며 "가치에 낀 거품, 벤처 자체의 도덕적 해이도 지적될 수 있지만 일단 (벤처가 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이종배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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