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경제에 무리를 주면서 물가를 잡을 수 없다"며 연내 금리 인상은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세계 금융불안 탓에 한은의 최대 과제인 '물가안정'은 당분간 포기했음을 공식 선언한 셈이다.
김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제는 (물가안정) 목표를 어떤 비용을 지출하고서라도 맞추느냐, 아니면 적절한 정책조합으로 갈 것인가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올해 물가안정 목표범위(3%±1%)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최근 자신의 발언에 대해 "물가목표는 3년 정도의 중기적 목표"라며 "(물가상승률이) 목표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 (목표를) 조정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강한 정책은 항상 실패했다"며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기는 힘들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한은이 물가안정을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라며 "경제를 동태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생각해야 한다. 세계경제가 불안하니까 인플레이션이 높아도 참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외국인자금 유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경제전망이 나빠서 나간 것이라면 우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럽이 자기가 필요해서 가져간 것"이라며 시장의 과잉반응을 경계했다. 한은법 개정을 계기로 논란이 불거진 은행채 지급준비금 부과 여부와 관련해서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다 하고 있다. 국회에서 부담이 된다면 (지준율을) 0%로 적용하고 위기상황이 오면 올리면 된다"며 지준 부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총재는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위한 중국 위안화채권 투자에 대해 "중국과 미국 등 상대방이 있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면 상대편이 우습게 볼 수 있다"며 말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