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기니서 온 필라델피아 운전사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연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 경제학자 모임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흑인 운전사를 만났다. 눈치 빠르게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챈다. 한·중·일 3국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면서도 우리끼리 말하는 어감에서 그 차이를 구분해냈다니 정말 눈치가 빠르기도 하다. 그 운전사의 말씨도 미국 흑인과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기에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아프리카 기니에서 왔다고 한다. 불어를 쓰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자 반가워서 내가 프랑스에서 7년을 살아 불어를 할 줄 안다고 말을 걸었더니 불쑥 "프랑스는 사람 살 데가 못되요"라고 대꾸한다. 그래도 내가 오랫동안 살아 정이 든 나라를 심하게 폄하하는 말을 하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더니 "미국·한국보다 일할 기회가 없는 곳이니 사람 살 데가 아니지 않느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나는 이제 7년을 살아 미국 시민권도 얻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미국은 불어를 쓰는 아프리카 사람에게조차 살아갈 기회를 제공하는데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프랑스는 이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택시 운전사처럼 무엇이든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살아갈 기회를 주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의미에서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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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직도 세계 곳곳으로부터 합법·불법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중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여하튼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는 땅이다. 많은 한국 교포들도 이런 미국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중에서는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은 훌륭한 인재들도 많음은 물론이다. 어쩌면 이 점이야말로 미국이 아직도 경제대국으로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제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기에 미국의 기술력·경제력이 계속 세계를 주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이 사회안전망을 미국보다 잘 갖췄음을 곧잘 예로 든다. 이러한 사회안전망은 그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그런 권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해도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차가운 땅이 돼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점점 더 사회안전망을 잘 갖춰나가고 있다. 고용·의료보험 등이 유럽 선진국들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발전해나가고 있고 무상보육·교육 등의 사회복지제도도 빠른 속도로 제도화돼가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안전망이고 나아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그만큼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게 하는 제도를 갖추는 일이 경제 발전과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모두 달성하게 하는 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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