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부-재계 '규제개혁' 마찰 심화

재계 "출자총액제등 완화"에 정부 "수용불가"■ 재계 주장 재계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잇따라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경제5단체는 기업규제 완화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다음주 중 59개 조항의 규제개혁안을 마련, 정부에 건의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오후 5월 정례 회장단회의에서 최근 산업분야별 경기동향 등 경제상황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정책 개선과제 등을 담은 사무국의 보고서를 토대로 현안을 논의한뒤 16일 열리는 정ㆍ재계 간담회를 거쳐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경제5단체 규제건의 전경련, 대한상의 등 재계는 ▦규제완화 ▦출자총액 한도 완화 ▦대규모 기업집단제도 폐지 ▦출자총액 한도 초과분 해소시한 연기 ▦동일계열 여신한도 규제 완화 등에 대해 정부의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내용은 59개항의 각종 규제완화. 경제단체의 고위 관계자는 9일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기업들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규제애로를 취합해 대한상의가 내주중 재정경제부와 규제개혁위원회에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건의는 총 59개 조항으로 ▦기업활력 ▦무역 ▦세제 ▦산업입지 ▦환경 ▦안전 등 6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이동전화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를 풀고 ▦불합리한 가산세제도를 개선하고 부가가치세 부과를 공장에서 법인 단위로 바꾸며 ▦해외현지법인별 한도관리 방식을 모기업의 지급보증총액 한도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또 ▦환경 친화기업 지정제에 등급별 인센티브제를 삽입하고 ▦건설업체가 착공전에 국유지 취득권을 소유하는 것을 매수신청후 국유지 재산 관리계획에 계상된 경우 착공신고 및 분양이 가능토록 하며 ▦반도체 공장은 클린룸의 오염이 우려되는 분말소화기가 아닌 CO2소화기 비치를 허용해 달라는 것 등도 담고있다. 이번 건의에는 전경련과 기협중앙회가 이견을 보이는 공정거래법과 노사정위에서 논의중인 노동법, 국회에서 심의중인 모성보호법은 제외됐다. ◇공정거래법 개정 필요 출자총액 제한제도와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 등 공정거래법은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이 오는 16일 진념 재경부장관ㆍ장재식 산자부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완화를 요청할 예정이다. 재계는 현재 출자총액제한으로 30대 집단에 지정되지 않은 공기업과 외국기업에 역차별을 받고 있고, 신규투자와 구조조정에 장애가 되며, 증시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익 전경련 본부장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30대 기업이 내년 3월까지 해소해야 하는 순자산의 25% 초과금액이 10조원 가까이 되지만 20여 그룹이 기한내에 해소하기가 불확실한 형편"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박사는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 폐지나 축소, 출자총액 규제를 없애거나 일본처럼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순자산 또는 자본금의 100%로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주회사 출범후 1년 이내 부채비율 100% 이하조항은 2~3년 이내로 연장하고 구조조정시 고용승계 의무화 조항을 철폐하며 구조조정 차원에서 신설회사에 현물출자할 경우 법원의 자산평가를 간소화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규제를 만들어내는 환경과 원인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재계간 긴밀한 협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경제5단체는 지난해 10월과 지난 2월 각각 43개와 40개의 규제개혁안을 정부에 제출, 시각차를 좁히고 있다. 한편 대기업 정책에 대해서는 정ㆍ재계간에 좀처럼 서로간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3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개혁에 집착해 기업의 활력을 옥죄는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글로벌 경쟁시대에 스스로 손발을 묶어 경쟁력을 떨어 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도 "출자총액제한제도, 기업지배구조개선 등이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라는 생각을 정부는 하지 않고 있다"며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정부 입장 정부와 재계의 마찰이 점입가경이다. 먼저 선공을 가한 측은 재계. 재계는 개혁의 고삐가 느슨해진 틈을 이용, 규제 남발이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위한 집중포화를 가했다. 이에 정부도 두손 놓고 있으면 자칫 여론이 재계쪽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높다고 보고 공정위를 앞세워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특히 경기침체로 정부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 재계의 기세는 수그러질 가능성이 높지 않아 정부의 재계간의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재벌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밝힌 것은 최근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는 기업규제 완화요구의 세(勢)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맞대응으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재계의 최근의 '집단행동'이 정부의 기업규제 완화 방침에 따라 기선을 제압, 보다 많은 것을 얻어려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고 있다. 오는 16일 정ㆍ재계 간담회를 갖고 규제완화에 대한 재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달 중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인 정부로서는 재계가 넘볼 수 없는 '불가침의 선'을 미리 그어둬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이와 관련, 이날 이 위원장은 기업 규제 완화와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한 재벌 정책은 별개임을 누차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는 일부 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벌정책이 후퇴하는 것은 아니다"며 "최근 재벌의 선단식경영과 지배구조 왜곡 행태는 IMF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라며 재벌을 몰아붙였다. 공정위는 이날 재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공박하는 자료를 별도로 만들어 재벌규제 정책의 타당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변경은 어불성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계열사에 대한 출자액을 순자산의 25%를 넘지못하도록 한 제도다. 지난 98년 2월 외국인의 적대적 M&A를 허용함에 따라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폐지됐으나 99년 9월 정ㆍ재계 합의로 부활됐다. 이 제도는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4월1일부터 발효됐지만 초과분에 대해서는 내년 3월 말까지 해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정ㆍ재계합의로 부활시킨 이 제도는 사실상 아직 시행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재계의 요구를 일축했다. 재벌들이 그동안 구조개혁 추진에도 불구하고 선단식경영과 왜곡된 소유구조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 98년 4월 17조7,000억원이던 순환출자 총액이 99년 4월 29조9,000억원으로, 2000년 4월 45조9,000억원으로 급증했다"며 "동일인이 적은 지분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소유지배구조 왜곡현상이 되레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회사에 출자를 아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순자산의 25% 이내에서 맘대로 출자할 수 있어 이익을 많이 내거나 증자를 하게 되면 출자할 수 있는 여력이 높아지며, 기업구조조정이나 (사회간접자본) SOC 법인설립 등에는 예외조항도 있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비핵심 분야의 진출을 최소화시키고 핵심역량에 집중하도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재벌문제가 있는 한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존치 30대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금지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의무화 ▦부당내부거래 조사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이 제도는 재벌의 경제력집중도가 워낙 높아 재벌그룹 내 한 기업이 망하면 해당 재벌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단식 경영을 막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일부에서는 외국에 전례가 없고 국내 진출 외국기업과의 차별을 둔다는 지적도 있지만 '재벌문제'가 존재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제도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또 5대그룹이나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완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보사태에서 보듯 하위집단이 부실화되는 경우에도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주는데다 이 제도는 금융ㆍ중소기업ㆍ세법 등 20개 법령과 맞물려 있어 공정거래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정부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될 사안이다"고 설명했다.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요구는 계열사 지배력 확장이 주목적 생산ㆍ영업활동을 하지 않고 자회사를 지배할 목적으로만 설립되는 지주회사 제도는 선단식 경영을 법적으로 허용한 제도다. 그동안 전면 금지해오다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를 고려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설립이 허용돼오고 있다. 공정위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요구(부채비율 200% 이상으로 완화 등)가 다른 저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 배당으로 운영되는 회사인데 100% 이상의 과도한 부채비율 허용을 요구하는 것은 순수한 사업목적보다는 지배력 확장에 주된 목적이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성보호법 하반기 시행 민주당과 자민련은 출산휴가를 현행 60일에서 90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모성보호 관련법 개정안을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고 하반기 중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신계륜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출산휴가를 1개월 늘리는 데 대해 재계도 크게 반대하지 않고 있으며 자민련과도 어느 정도 의견접근이 이뤄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육아휴직제도는 재계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 절충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구찬기자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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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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