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이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주식시장이 과열이라고 호들갑이다.
정부 관련 부처 인사들의 부동산 관련 경고성 발언이 쑥 들어간 반면 주식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발언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걸로 봐서는 확실히 부동산시장은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직장인들의 술자리 화제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옮겨 탔다.
그렇지만 부동산은 언제 다시 꿈틀거리며 폭발할지 모를 시한폭탄 같아서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부동산 가격 전망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어느 누구의 말도 선뜻 믿고 따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우리의 부동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구는 많고 그에 비해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곳의 땅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의 집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우리의 부모들이 집 때문에 겪었던 아픈 상처와 기억들은 우리들 가슴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며 유전인자로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셋방살이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집주인 앞에서의 비굴함과 눈치보기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게다.
못 하나도 마음대로 박을 수 없고 물 많이 쓴다고 면박을 주며, 행여 애들끼리 싸움이라도 할 경우에는 잘잘못을 떠나 으레 셋방 아이가 혼나게 마련이었으니까.
물론 오늘날의 이 같은 주택문제는 비단 현대 한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이미 18세기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은 이 같은 주택문제에 직면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구증가로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것은 주택문제와 도시 빈민문제, 각종 환경문제 등이다. 18세기 한양도 이 문제들로부터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 한양에서는 양반 사대부들이 적당한 거처가 없을 경우 양반 신분을 무기로 평민의 집을 강제로 빼앗아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를 일컬어 여가탈입(閭家奪入)이라고 했는데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백성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평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17세기 후반 숙종 때 이르러서 이에 대한 금지 조치가 본격적으로 취해지기 시작해 정조 때인 18세기 후반 이러한 사태가 거의 사라지게 됐다.
조선시대 자행됐던 여가탈입이 3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재연되고 있다면 과장된 것일까.
참여정부 출범 이후 줄기차게 추진해온 주택정책이야 말로 바로 신종 여가탈입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역에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이들 지역에 집을 공급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정부는 집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집값을 낮추는 데만 온통 신경을 집중, 집을 내놓게 하는 정책을 폈다.
과거 여가탈입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면 오늘날의 여가탈입은 세금이라는 적법한 수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섭게 뛰는 집값에 불안한 나머지 은행 빚을 내서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들까지도 집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지속적인 집값 잡기 노력에 힘입어 일단 부동산시장의 과열 분위기는 확실히 진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건설업체는 건설업체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들대로 어렵다고 한숨이다.
지방에서는 분양이 안돼 부도 위기에 몰린 건설업체 명단이 업계에서 공공연히 돌고 있고 집 한 채 마련이 소망이었던 서민들은 갈수록 집 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장담했던 세금폭탄에 의한 매물도 예상밖으로 적을 뿐 아니라 다주택 보유자들은 이 정권만 넘기면 해결책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버티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시장은 잡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된 것도 아닌 ‘같기도’ 시장이 되고 말았다.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이 여가탈입이었다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순리대로 주택정책을 펴야 한다. 그 답은 시장에 물어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