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가 일찌기 겪지 못했던 한 해가 될 것같다.노사관계는 물론 한국사회 전체로 볼 때 우리가 제대로 된 사회, 제대로 된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판가름나는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처럼」은 지난 한 해 우리사회의 생존처방이었다. 미국식 정리해고만이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지배했다.
아무런 근거나 기준도 없이 종업원을 무조건 20~30% 정리하면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1년 내내 벌어졌다.
미국경영자협회에 따르면 91~94년 정리해고를 실시한 기업의 절반만이 영업이익이 증가했을 뿐 65%는 생산성이 하락했고, 98%는 사기저하를 경험했다. 미국기업에서는 정리해고 후 고혈압을 앓는 노동자가 2배로 증가했으며 노동자의 65%가 기력쇠진, 불면증, 스트레스 증세 등으로 고통을 호소했고 3분의 1은 업무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또 질병에 따른 노동시간 상실과 의료비용으로 연간 100억~300억달러가지출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정리해고 때문에 노동자의 관심이 고객이나 외부환경보다는 의사결정권자 등 내부로 집중되고 동시에 조직이 관리·통제 위주로 경직화될 수도 있다고 한다. 임직원의 애사심을 약화시켜 조직기강이 해이해지고 정보, 기술, 우수인재의 외부 유출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정리해고에 따른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연구가 보고됐다. 5대 국내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6%가 불안, 죄의식, 자기모멸감 등에 시달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해고는 써서는 안 될 극약인 것이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은 무조건 20~30%씩 인원을 감축했다. 또 노동자들의 85% 정도가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것을 감수했다. 반면 기업주들의 부당노동행위는 97년에 비해 두배 가까이 늘었다. 기업이 잘 될 때에는 보여주지 않던 기업경영정보를 앞다퉈 노동자들에 공개했다. 그 의도는 자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관계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대통령이 무분규선언을 하라고 해서 노사화합이 되는게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어려울 때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비 온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노동자를 주인으로 알아야 한다. 경쟁력의 유일한 원천이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투명한 기업경영은 세계화 시대에 기업의 생존기반이다. 내부고객인 노동자를 못믿으면서 어떻게 경영을 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자료를 진실된 마음으로 공개하고 노동자를 기업경영에 참가시켜야 한다. 특히 정리해고는 위기 증폭형, 책임전가형, 비용증대형 구조조정 방식이자, 혼자만 살겠다고 하다가 다 죽는 방식이다. 정리해고는 더 이상 묘약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