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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정부의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 방침에 대해 건설업계가 강력 반발하는 것은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가뜩이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데 과당경쟁과 덤핑입찰 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절감을 이유로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부실시공에 따른 사후 관리 비용이 더 들어가고 지방 중소건설사의 도산으로 이어져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건설업계는 주장한다. ◇건설업계 "부실시공으로 유지보수비용 더 들 것"=
최저가낙찰제는 지난 1962년 처음 도입된 후 세 차례나 폐지됐다 2001년부터 다시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부침을 겪은 것은 과도한 덤핑과 부실시공에 따른 예산낭비와 인명손실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가격중심의 최저가낙찰제 시행 대상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2001년 1,0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에만 적용되던 제도가 2003년 500억원, 2006년 300억원으로 확대됐고 내년 1월부터 1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에도 적용된다. 건설업계는 최저가낙찰제 확대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정부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과당 경쟁과 덤핑 수주에 따라 부실시공이 이뤄질 경우 유지보수비용이 더 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창환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입찰시점에서는 예산절감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나 설계와 유지관리 등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부실시공 증가에 따른 추가비용 발생 가능성이 높아 예산이 더 들어간다"면서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예산낭비를 이유로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최고가치낙찰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미 2009년 3월 국가경쟁력위원회가 최저가낙찰제를 100억원 이상의 공공건설 사업으로까지 확대 시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건설선진화방안을 발표하면서 건설업계의 다양한 입장을 담았고 보완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방안이 발표된 지 2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제도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시간이 임박해 제도 도입에 반발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는 이미 예고했다고 말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내년에는 공공공사 발주 물량이 7% 이상 줄어들 텐데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는 것은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지방 중소건설사 줄도산 우려=
건설업계는 최저가낙찰제가 확대되면 지방 중소건설사가 고사 위기로 몰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1억원 이상의 공사를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한 업체가 29%나 되는데 최저가낙찰제가 확대되면 출혈 경쟁이 나타나고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전체 4조원 수준인 100억~300억원 규모 공공 발주 공사의 경우 75%가 지방건설업체가 수주하는데 지난해 최저가낙찰제 공사 가운데 12%는 적자를 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사는 수주물량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에 일단 매출을 올리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고 입찰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재무구조가 튼튼하지 못한 지방 건설사가 얼마 못 버티고 줄도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저가낙찰제가 건설업계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업계 분석 결과 2006년 최저가낙찰제가 500억원 이상 공사에서 현행 3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된 후 연평균 5만6,000개의 내국인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가 공사비를 줄이려고 내국인 대신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 근로자를 주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미숙련 근로자가 늘면서 산업재해도 덩달아 증가했다. 2009년 공공공사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현장 21곳 중 19곳이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된 곳이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는 가격 경쟁을 통해 기술개발을 유도하려 하지만 적정한 금액의 공사를 해야 수익도 남고 그 돈으로 기술개발도 할 수 있다"면서 "결국 원가부담을 느낀 건설업체가 하도급 업체나 자재ㆍ장비 업체를 쥐어짤 수밖에 없고 값싼 노동력의 대거 유입으로 이어져 건설인력의 공급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