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예금으로 모은 돈을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 까지 1년간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에 투자한 돈은 1조1,000억원이 넘는다. 같은 기간 늘어난 예금은 약 2조 5,000억원. 고객들로부터 신규로 유치한 예금의 40% 이상을 부동산사업에 대출해준 것이다.
높은 수익을 노리고 집중적으로 자금을 굴리는 것이지만 만약 부동산개발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기대 이하의 수익률에 그칠 경우 저축은행은 사활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전문성을 갖추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곳도 있지만 `모 아니면 도`식으로 유행처럼 뒤따르고 있는 일부 저축은행들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금리 높여 부동산사업 대출 재원 마련= 부동산 사업에 대한 대출 붐은 지난 2001년 코미트금융그룹 산하의 한국ㆍ진흥ㆍ경기저축은행이 부동산 사업 대출로 큰 수익을 내면서 지난해 말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한솔이 약 2,500억원을 부동산 사업에 대출했고 한국과 진흥이 각각 1,000억원, 솔로몬이 980억원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이 나온 5월 이후에도 한솔이 300억원 규모의 토지매입자금 대출에 나서는 등 끊이지 않고 있다.
콜금리가 5월과 이달에 걸쳐 0.5%포인트나 떨어졌지만 저축은행들은 오히려 예금금리를 올려 부동산사업 대출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지역 주요 저축은행의 1년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6.2%. 최근 한국ㆍ진흥저축은행이 연 6.69%의 정기예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좋은저축은행과 교원나라저축은행도 금리를 올려 6.8%와 6.2%의 정기예금 상품을 내놓았다. 솔로몬저축은행도 올 초 연6.8%를 적용하는 특판 상품을 판매해 필요한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사업에 대한 대출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이라고 지칭한다. 특정 부동산 사업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대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은행들이 대규모 프로젝트 개발에 동참하며 금융지원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금사정이 악화돼 건축을 중단한 빌라나 다세대 주택, 아파트 등에 저축은행이 긴급자금 형식으로 대출을 해주거나, 개발예정 토지를 담보로 한 개발업자에게 대출을 해줘 개발업자가 토지를 매입하고 사업허가를 받게 되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갚게 하는 브리지론 방식이 보편적이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잃으면서 저축은행들의 관련 영업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브리지론 방식의 경우 개발업자가 사업 허가를 못 받게 되면 고스란히 자금이 묶인다. 또 아파트나 상가 분양사업에 대출할 경우 경기 침체로 분양이 안 되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출 규모도 수백억원 대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들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A저축은행의 경우 300억원을 투자한 분양사업이 실패해 투자자금 회수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전문성 강화가 관건= `남들이 재미를 보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무작정 사업에 뛰어드는 저축은행은 위험하다.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저축은행이나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경우 한국토지공사나 부동산신탁회사 등에서 다년간 개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을 영입해 개발 수익성을 꼼꼼히 따지고 있다.
동부저축은행의 오명규 상무는 “평가분석(Valuation)능력이나 운용능력, 리스크관리능력이 취약한 중소형 저축은행들이 대책없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뛰어든다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원정기자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