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8월23일, 조선과 청이 통상조약을 맺었다. 이름하여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왜 조약이 아니고 장정일까. 조선이 청의 속방이었기에 조약보다 하위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장정은 일방적으로 불리했다. 청상들에게 조선의 통제를 무시하고 마음껏 장사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심지어 ‘물고기떼가 기선에 놀라 도망쳤을 때 청의 어선들이 서해안에 머물 수 있다’는 황당한 조항까지 포함시켜 연안어업권마저 넘어갔다. 불평등 장정의 배경은 조선이 스스로 끌어들인 청나라 군대. 외세의 힘을 빌려 임오군란을 간신히 진압한 대가는 무리한 요구로 돌아왔다. 조선은 청이 과거처럼 형식적인 종주국-속방의 관계를 유지하며 외세로부터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헛된 꿈이었다. 한국 화교가 형성된 것도 이때다. 청군의 비호 속에 화상들은 특유의 단결과 근면함으로 조선의 중앙상권은 물론 지방의 보부상과 객상의 설 자리까지 빼앗았다. 요즘의 명동 중국대사관 터도 청군이 주저앉았던 이경하 포도대장의 집을 화교들이 헐값이 사들인 것이다. 청일전쟁 패배로 타격을 입기 전까지 화상들은 조선 대외무역의 절반 가까이 장악할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서해안에서는 불법 월경한 중국 어선들이 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있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권도 과거형이 아니다.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서울을 지날 때 중국인들은 한국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티벳 사태에 항의하는 한국인 시위대를 두들겨 팼다. 상황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고약하다. 중국의 경제력이 그렇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다. 오죽하면 중국 관중이 올림픽 야구 한일전에서 일본을 일방적으로 응원할까. 명분도 실리도 다 잃고 있는 가운데 우리를 괴롭혔던 그들의 힘은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