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국내 증시를 패닉에 빠뜨렸던 그리스 악몽이 되살아나며 증시가 큰 폭으로 출렁거렸다. 그리스가 정국 불안으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기되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대거 매도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와 그리스 등 유럽의 정권교체 리스크로 인해 당분간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외국인이 빠져 나가더라도 증시에 충격을 줄 정도로 대규모 이탈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6.72포인트(0.85%) 하락한 1,950.29포인트에 장을 마쳤다. 지난 1월 30일 이후 3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외국인은 이날 3,455억원 어치를 순매도하는 등 최근 6거래일 동안 1조4,72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거래대금은 이날 4조8,936억원에 그치며 5거래일 연속 4조원대에 머물렀다.
외국인이 내다 팔면서 경기에 민감한 업종들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건설업이 2.36% 하락한 것을 비롯해 운송장비(-2.14%), 기계(-2.08%), 화학(-1.49%), 증권(-1.18%) 등이 약세를 나타냈다. 대형종목 가운데는 현대중공업(-5.10%), 삼성중공업(-5.83%), LG화학(-3.86%), SK이노베이션(-3.55%), S-Oil(-2.80%), 현대건설(-4.15%), GS건설(-4.14%) 등 조선과 화학, 건설업종 대표주들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외국인은 특히 건설과 화학, 조선업종에 대한 매도세를 높였다. 최근 6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LG화학(-3,815억원)과 호남석유(-537억원), GS건설(-493억원), OCI(-467억원), 삼성중공업(-414억원) 등을 내다팔았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선과 건설업종은 수주 모멘텀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고 화학업종은 제품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다”며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모멘텀이 떨어진 종목의 매도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증시가 유럽 정권 교체 리스크에 따라 출렁거릴 것으로 평가했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은 “그리스 총선 결과 원내 2당으로 올라선 좌파연합이 긴축정책을 파기하고 유로존을 탈퇴할 수 있다는 부정적 우려로 인해 국내 증시가 이날 크게 하락했다”며 “이달에는 그리스와 프랑스의 정책변화 등이 국내 증시를 좌우하는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연구원 역시 “최근 3년 동안 외국인 매매를 결정 짓는 것은 유럽 요인”이라며 “유럽 주요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투자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처럼 코스피지수가 하루에 2~3% 가량 빠지는 악몽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성봉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은 유럽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우려가 심각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최근 유럽의 금융기관 간 신용부도스와프(CDS) 지표가 지난해처럼 높지 않아 주식시장에 주는 충격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병연 연구원 역시 “유럽의 정권교체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악재로 작용했지만 외국인의 투자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며 “이달 들어 미국 뮤추얼 펀드 자금 유입이 지난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환율과 유가가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 외국인의 엑소더스 우려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