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판을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며 "정부와 국무위원들ㆍ수석들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책임장관제' 공약에도 꼭 부합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의견이 달랐던 장관과 검찰총장은 떠났다. 말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모든 정책을 직접 챙기는 대통령의 '깨알 리더십'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결정을 내리면 주무부처 장관이 반대하건 말건, 국민들이 이해하든 못하든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일방통행의 수직적 구조 속에 토론과 문제제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국정운영이 난기류에 빠진 건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책임감과 사명을 말하는 자체가 우습다. 한때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일컬어지며 공약개발에까지 참여했던 이조차 '못해먹겠다'고 나가는 마당이다. 어느 누가 반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정책을 건의할 수 있겠는가. 공약집에 명시된 책임장관과 검찰의 독립성 보장도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나라 헌법구조에서 박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막강한 권한이 곧 안정적 국정운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국정안정은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하는 장관과 정부가 존재하고 이를 믿고 따르는 국민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국정혼란을 수습하고 경제회복에 힘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을 버리고 책임장관을 세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