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바닷속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정녕 기적은 없는가. 온 국민의 애가 타들어가는 간절한 염원에도 진도 앞바다에선 좀처럼 생환의 낭보가 들리지 않는다. 노란 리본을 단 대한민국은 비탄 그 자체다.

안산 올림픽기념관에도, 서울 시청 앞에도 꽃다운 학생들의 희생에 너무 가슴 아픈 굵은 눈물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국민들은 저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길디 긴 한숨을 토해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많은 배들 중에 혼자 안갯속을 뚫고 인천항을 출항한 세월호는 일본이었으면 다닐 수 없는 낡은 배였다. 3등 항해사의 과실인지, 키의 고장인지 맹골수도에서 세월호는 침몰했다. 69세 계약직 선장을 포함한 15명의 선원들은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살인죄로 다스려도 시원치 않다는 게 국민의 법 감정이다.

이 모든 제도적·기계적 잘못과 더불어 시맨십(seamanship)을 헌신짝처럼 버린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산업·정보기술(IT)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말도 안되는 해난사고는 한달 반이 아니라 일년 반, 이년 반이 걸리더라도 그 원인과 과정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동시에 배 침몰을 인지하고 구조에 나섰던 해경·해군의 초기 대응과 이후 구조작업이 신속하고 정확했는지, 또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재난 구조능력은 더 발전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 딸과 아들 들은 살아오지 못한다. 너무나 귀중하고 존엄한 생명은 애당초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자 최고의 가치임을, 잃은 다음에야 우리는 땅을 치며 깨닫는다. 과연 개인들만 그럴까. 우리 기업은, 정부는, 사회는, 다시 말해 우리 공동체는 생명과 인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는지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4년 전 천안함이 두 동강 나 바닷속에 가라앉았을 때 국민들은 재촉했다. 빨리 들어가 구하라고. 이런 성화에 떠밀려 안전규칙보다 더 많이 잠수한 한주호 준위는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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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가 한시가 급한 절박한 상황임을 모르고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더욱이 해경과 정부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무조건 잠수사와 해경·해군의 등을 떠밀다간 또 다른 생명이 위험해진다. 잠수의 가이드라인 역시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의 가치다.

규제 완화를 이유로 선박 안전규제들이 폐지돼왔다. 안전관리책임자가 배에 타 별도 점검을 하던 규정이 지난해 6월부터 없어졌다. 앞서 선령(배의 나이) 제한은 20년에서 30년으로 늘었다. 선사, 즉 기업의 경영 애로를 해소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규제마저 푸는 건 생명보다 돈을 앞세우는 짓이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은 6개월~1년짜리 비정규직이다. 일년 교육비가 달랑 54만원이라는 청해진해운 직원들에게 사명감과 숙련된 안전 노하우를 기대하기 힘들다.

안전보다 비용절감이 앞선 가치인가. 싼 임금만 좇는 기업과 국가도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고졸 학력 정도의 근로자들이 가정을 꾸려 오손도손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적절한 임금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 중심의 국가 전략'이 성장 타령만 하는 대한민국에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비정규직 등 저임금 근로자들은 당장 기업에 이윤을 더 안겨줄지는 몰라도 사람 값이 싸지면 사회적·경제적 손실은 커진다. 전문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저임금으로 내수가 위축돼 결국 일자리가 줄고 양극화가 심해진다.

양극화는 경제성장을 막는다. 도널드 베나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논문 '불평등과 성장'에서 불평등에 관한 연구 23개를 재분석한 뒤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을 낮추는 결정적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미국 경제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때문에 생산성·효율성 감소, 성장 둔화, 불안정 심화 등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성장을 앞세워 가난을 면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나 안전을 비롯한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기는커녕 세우지도 못했다. 2014년 잔인한 4월, 바닷속 세월호는 대한민국이 사수해야 할 절대 가치가 무엇인지 애절하게, 그러나 단호히 묻고 또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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