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해방이후 뒤틀린 역사가 선조이름 욕되게해"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69주기 추모식"독립운동한게 무슨 자랑거리냐? 이런 소리를 무수히 들었습니다. 더구나 아나키스트의 경우 공산분자로 몰려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아나키스트 혁명가 유자명 선생의 손자 유인상씨) 지난 1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심산 김창숙 등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의 후손 20여명이 모였다. 몇몇 유족들끼리는 간헐적인 교류가 있었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모임을 갖기는 이날이 처음. 그들의 만남은 역사 앞에 영광스러웠다. 그러나 광복 이후 뒤틀린 정치 탓에 받았던 고통은 가슴 깊이 상처로 남아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할아버지의 명예로운 투쟁은 해방된 조국에서 되레 후손들에게 가혹한 형벌이 되어 돌아왔다. "독립운동의 화근이 3대는 간다지 않습니까? 이제 그 만한 세월이 흘렀으니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지요." 유자명 선생과 함께 상하이에서 아나키스트 혁명운동에 투신했던 오면식 선생의 손자 오철성씨의 말에도 오랜 시름이 배어있었다. "해방 이후 역사가 올바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승만 정권 10년은 친일파들이 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기간이었습니다." 오전 12시 30분께 마련된 오찬 자리,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인사말에 20여명의 유족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광복 후 일본의 지배를 대신한 미국 군정청과 뒤이은 이승만 정권은 권력유지를 위해 친일성향의 관료와 경찰, 군인들을 중용했으며, 이들 친일파들은 재빠르게 친미ㆍ반공주의자로 변신해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움켜쥘 수 있었다. 그 반대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욱이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은 용공주의자로 몰려 수 대에 거쳐 커다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우여곡절끝에 독립한 나라에서 독립운동가는 홀대받고, 독립을 가로막았던 이들이 득세한 우리의 현대사. 이는 역사의 역류이며 정의에 대한 거역입니다." 오찬석상에서 한 후손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대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그와 같은 맥락에서 기억 속에서 잊혀져 왔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을 바로잡는 일은 우리 후손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이라고 동조했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지만, 당시 이회영 등 우리의 아나키스트들은 권력과 제도를 거부하고 자발성과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해방운동이나 혁명운동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며 운동가 자신들도 자유의사와 자유결의에 의해 수행한다. 그 형태는 어떠하든지 사실은 자유합의에 의한 조직적 운동인 것이다. " 우당 이회영 선생이 남긴 이 말에 그 사상이 함축돼 있다. "해방 직후 지광(김성수) 선생의 기개는 참 대단했어요. '일본 잔재부터 척결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해요." "맞아요. 그런 분이 오래 살아계셨더라면 아마 우리 역사도 크게 달라져 있겠지요." 자리가 익어갈수록 후손들의 선조에 대한 긍지와 역사에 대한 회한은 더욱 복잡하게 교차되고 있었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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