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 할수록 글쓰기는 더 어려워진다. 읽든 보든 듣든 끼고 사는 글이지만, 막상 문장을 뽑아내려면 머리 속이 텅 비어온다. 옛부터 좋은 글과 글쓰기에 대한 정의는 비슷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간결하고 본질을 꿰뚫는 문체로 써 나가는 것.
하지만 시절마다 유행하고 떠 받들여지는 경향은 달랐다. 때로는 질박하고 명확한 글이, 때로는 화려하고 형식적인 글이 득세하고 뒤엉키고 쇠락해왔다. 어스름하게 돌고 돌았다. 흥청망청 흘러가다 바짝 고달픈 시절이 돌아오고, 그 속에 승승장구하다 급전직하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때마다 사람마다 나오는 글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저자도 지적하듯 당송팔대가의 대표격인 한유는 어려운 시절과 벼슬길이 트인 만년의 글이 다르다.
'당송팔대가'는 바로 쉬운 단어, 간결한 문장, 명쾌한 기승전결을 옹호했던 당나라 한유와 유종원, 그리고 북송 때 구양수·소순·소식·소철·중공·왕안석 등 8명의 산문작가들을 일컫는다. 그 중 한유와 함께 앞자리를 차지하는 유종원은 그 이전의 글쓰기 성향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은·주 이전에는 그 문장이 간결하면서 거칠었는데, 위진 이후로 방탕하며 어지러워졌다. 적절함을 이룬 때가 한나라인데, 동한 이후로는 쇠퇴해버렸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 당나라 때 한유와 유종원이 진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고문운동'을 일으켰지만, 이들이 죽은 후 다시 형식과 미사어구가 가득한 변려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북송 때 구양수를 필두로 통속적 어투와 일상어를 사용한 산문이 힘을 되찾는다.
특히 당송팔대가가 싫어했던 것은 사륙변려체의 글(변려문). 4자나 6자 단위의 문장에 반드시 서로 대구를 이뤄야했고, 전고(전례와 고사)로 뒤범벅돼 당장 말하고자 하는 사실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복잡한 규칙과 풍부한 전고 만이 '명문'의 기준이었고, 이 봉건지배층의 양식은 왕이나 황제를 칭송하거나 아부 섞인 글에 어울렸다. 저자의 말처럼 '아부하는 거짓말'이요 '방탕하며 어지럽다.'
그들이 강조하는 글쓰기를 거칠게 정리하면, 세상일을 깊이 생각하고, 실제로 쓰는 단어로 꼭 필요한 내용만 명료하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시적인 문장에 사실적이고 상세한 묘사까지 취한다면 더 좋다고 강조한다.
역시 글쓰기는 어렵다. 저자인 우멍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접하고 당대의 석학인 탕웨이즈·첸쯔취안·야오융푸 등에게 수학한 중국 국학의 권위자다. 그런 그 역시도 책 후기에 "식견 높은 사람들의 주장을 수용하되 고금으로 나누지 않았고, 어리석은 내가 터득한 것도 얕고 비루함을 사양치 않고 서술해두었다"며 슬쩍 비켜간다.
고문 관련한 전공을 가졌거나 어지간히 관심이 많은 이가 아니라면, 솔직히 한자와 한자어가 가득한 500페이지 분량의 이 책을 소화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다른 당송팔대가에서 일관된 요지 '질박하면서도 명쾌한' 글에 대한 기준은 확실히 해준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