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 주재의 부동산대책회의에 이어 17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 부동산대책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밤낮 회의는 부지런하게 하는데 속 시원한 대책은 없고 과거에 해왔던 정책만 재탕해 내놓는다는 소리가 들린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통해서라도 투기를 잡겠다던 정부의 서슬 퍼런 다짐도 이제는 약효가 떨어진 것 같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강화될 때 투자하면 손해보지 않는다는 이상한 법칙이 진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대출규제·실수요위주 공급 확대
나라 전체가 부동산 광풍에 휩싸이면서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려는 서민들은 하루 아침에 바보가 돼버렸다. 분당의 주상복합 대형평형은 1년 사이에 7억원에서 14억원으로 두 배나 가격이 올라 시세차익만 7억원이 남을 정도이다. 은행 금리가 낮다 보니 무조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대형 아파트를 사두지 않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을 정도로 부동산 열풍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정책의 딜레마에 있다. 현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토 균형발전이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진단에 따라 수도권에 신도시 서너 개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판교에서 보았듯이 새로 발표되는 신도시가 오히려 부동산 투기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도 곤혹스러운 입장은 마찬가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했지만 좀처럼 경기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싼 금리를 이용해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가 더 침체될 것 같고 그대로 두자니 부동산 망국론이 나올 것 같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현재 금리수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은행돈을 빌려서라도 부동산을 사두면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지금까지 깨진 적이 없기 때문에 부동산 거품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생산설비로 투자돼야 할 돈이 부동산으로 몰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암에 걸린 환자가 수술을 하면 당장은 체중이 줄고 기력도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몸이 된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에 다소 타격이 있더라도 한국은행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규제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부동산 열기를 식혀야 한다. 물론 1가구 1주택 확보를 위한 부동산 구입이나 기업의 생산과 직결되는 부동산은 예외로 해야 한다.
판교 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서울시 뉴타운 등 최근 발표된 개발계획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이 신도시들이 완성되려면 최소한 십년은 걸리지만 그 열풍은 발표와 동시에 전국을 강타한다. 현재의 부동산 투기열풍은 부자들의 잔치이다. 중대형 평형의 초호화 아파트들이 가격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중소규모 신도시 건설 바람직
문제는 이러한 가격상승이 서민들을 부추겨 중소형 아파트의 가격까지 동반 상승시키는 데 있다. 부자들의 잔치에 정부정책이 왔다갔다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오히려 정부는 서민들을 위한 중소형 아파트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금의 부동산 과열을 진작시키려면 개발계획의 섣부른 발표보다는 실수요 위주의 차분한 공급확대정책이 필요하다. 분당과 같은 대규모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은 제2, 제3의 판교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다. 따라서 과다한 인구집중을 유발하고 부동산 열풍을 일으키는 대규모 신도시보다는 중소규모의 신도시가 오히려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