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경영학]신원"버려야 산다" 계열사 완전정리
외환위기 당시 불어 닥친 기업도산 바람은 방만경영의 대명사로 불리던 섬유ㆍ의류업계에는 더욱 혹독했다. 관련업체가 줄줄이 도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숙녀의류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졌던 의류전문업체 신원도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난 98년 7월,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견디다 못한 신원은 마침내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만다. 당시 업계에서는 신원이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얼마 못 가 문을 닫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난 지금, 신원은 재기의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다. 그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안정적인 영업을 바탕으로 지난해 9월 워크아웃 자율추진업체로 전환된데 이어 올 상반기 워크아웃 완전 탈출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의 회생에는 무엇보다 소유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회사를 살리고자 했던 오너의 '살신성인'정신이 돋보인다.
지난 73년 언론계를 뛰쳐나와 신원의 모체가 됐던 스웨터전문 수출업체 신원통상을 설립, 25년동안 승승장구하며 이 회사를 국내 최대 의류업체로 키운 박성철 회장은 '회사만은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소유지분 27%를 통째로 내놓았다.
당시 부실기업 오너들이 어떻게든 소유지분을 내놓지 않으려고 버티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채권단이 8,500억원 가량을 선뜻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한 것도 박 회장의 이런 용단이 보여준 신뢰의 결과였다.
신원의 지난 3년여의 구조조정과정 역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눈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워크아웃 당시 국내에 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던 신원은 신원종합건설, 신원인더스트리 등 모든 계열사 지분을 깨끗이 정리했다. 2,000명이 넘던 본사 인력도 절반이상을 정리해 970여명으로 줄였다.
10여개의 의류 브랜드도 경쟁력 있는 5개(베스티벨리, 아이엔비유, 비키, 씨, 지크)만 남겨놓고 모두 없애 버렸다. 명동 요지에 있는 시가 800억원 상당의 제일백화점 건물도 매물로 내놓았다. '버려야 산다'는 교훈을 실천코자 했던 임직원들의 의지가 회사 회생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신원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한 것도 주목거리다. 절박한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공장은 대거 폐쇄한 반면 해외 생산기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가절감을 통한 달러 획득에 주력해 온 것.
그 결과 신원은 수출 비중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추게 됐다. 현재 중국(가죽제품), 인도네시아(쉐타), 과테말라(니트)에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는 신원은 올 연말 베트남에 또 하나의 생산기지를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이제 신원의 목표는 단순한 워크아웃 탈출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초우량 패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업무 시작전 30분의 공동 기도회를 통해 한마음 한 뜻으로 기업회생과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기원했던 임직원들의 소망이 현실로 나타날 것인지 기대된다.
신원의 한 관계자는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속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고부가가치 패션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며 "단순 의류 생산업체에서 글로벌 패션업체로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중"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강동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