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두살 터울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여느 남매들처럼 어린 시절엔 자주 투닥투닥, 가끔은 토닥토닥하며 지냈습니다.
동생은 지방대를 다닙니다. 의료분야 과학자를 꿈꾸며 전공을 선택했지만 동생 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엔 자신의 대학 앞에 붙은 ‘지방’이란 단어가 너무나 남루하다는 사실을 과선배들은 술자리 때마다 푸념처럼 털어놨다고 합니다. 일찌감치 꿈을 잃거나 버린 선배들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진 않을 것이라 수없이 다짐했지만 동생 역시 그게 맘처럼 쉽지 않았나 봅니다.
4학년이 된 동생이 향한 곳은 서울 노량진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자신의 청춘을 세 평 고시원에 구겨넣은 채 동생은 오늘도 고시 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무원의 응시 인원은 20만명, 경쟁률은 51.6대 1에 이릅니다. 90kg 되는 체구를 그 좁은 바늘 구멍에 넣어 보겠다는 동생의 몸부림은 이제 한 달이 다 돼갑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처럼 제 동생 또한 기약을 알 수 없는 먼 길에 막 첫 걸음을 뗀 셈입니다.
“누구랑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해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제게 건넨 첫 마디였습니다. 친구란 존재가 자기 인생의 방해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 스스로를 철저히 ‘혼자’로 만들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소년에서 어른이 된 제 동생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고. 아니, 어른이니까 길을 잃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어둠처럼 깜깜한 길을 헤매고 있는 제 동생, 당신은 내 대한민국입니다.
[추석 기획]가족, 당신은 나의 대한민국입니다. 이전 편을 보고 싶으시면
[예고편(클릭)]
<1> 전업주부, 엄마의 이야기(클릭)<2>철근공 아버지와 철덜든 딸의 이야기(클릭)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