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업화`를 외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그러나 그 이면에 심각한 분열과 대립이 자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념대립과 노사간ㆍ지역간 갈등, 여야의 극한 대립, 집단이기주의의 발호가 그것이다.
당연히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마다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마침내 국민통합의 상징적 인물이 당선됐고 당선자는 선거 후 첫 회견에서 `7천만 민족의 대통합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통합의 경험을 갖고 있다. 월드컵 때 온 국민이 `환희의 바다`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경험을 했으며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가 국민통합을 달성한다면 폭발적 성장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통합ㆍ국민통합의 목적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새로운 진화를 촉진하고 남북간의 평화정착을 이룩하며 `세계화의 세계화`(미국적 세계화가 아닌 다양화 세계화)를 추진하는 창조적 주체가 되는 데 있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국민적 비전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외환위기(IMF) 극복이라는 당면 비전이 있었고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까지 하며 위기극복에 동참했다.
그러나 점차 구조조정을 유럽적인 사회통합형이 아니라 미국의 신자유주의형으로 추진함으로써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증폭됐다.
더구나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민주적 리더십으로 `희생의 교대` 방식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권력 핵심부(청와대)→정부→공기업→대기업→중소기업 순이 아니라 반대 순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로부터 생기는 반작용 때문에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발동되는 듯한 양상도 빚게 됐다. 여기에 구조조정방식이 안으로부터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쳤다기보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금융자본에 의해 밖으로부터 강요된 데다 인사편중까지 겹쳐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구조조정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마련이고 한국의 경우는 구조조정의 성과도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분열이라는 비용이 너무 컸다. 그만큼 개혁피로현상도 빨리 왔다.
따라서 국민통합형 뉴 스타트는 국민적 공감을 사는 비전의 제시로부터 시작해 민주적 리더십으로 방법과 절차에 대한 민주적 합의과정을 거치면서 `회생의 교대`에 위한 국민감동의 연쇄형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부는 투명한 룰(rule)에 의한 공정게임을 보장하는 게임의 운영자 및 감독자여야 한다. 게임패배자를 위한 `패자부활전` 시스템의 구축과 게임 참여 불능자에 대한 사회적 구제시스템도 필요하다.
여기에 핵심이 되는 것은 사회통합형 구조조정이다. 사회통합형 구조조정이란 미국과 같은 주주중시(shareholder) 자본주의가 아니라 유럽과 같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의 유연성만 강조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주주와 노동자ㆍ고객ㆍ공급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총체적 유연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가족이 기업을 소유하는 가족기업(family business)이 아니라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가족 같은 유연성을 갖는 기업가족(business family)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당선자측에서 최근 대주주 혹은 최고경영자(CEO)의 감시감독을 위해 사외이사의 증가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재고를 요한다.
사외이사는 이해관계자 밖에서 나오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감시감독의 한계가 있고 형식적으로는 객관적 제3자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대주주의 사적 하수인이 될 위험이 크다.
오히려 종업원 대표를 이사로 영입하는 것이 견제기능이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에 직결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희생의 교대` 원칙의 적용이 필요하다.
사회적 강자인 기업이 종업원을 사외이사로 받아들인다고 나선다면(먼저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기업내의 연쇄적인 감동을 낳아 종국에는 경쟁력 향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사회통합을 위해 노사협력형 구조조정을 제의하면서 `노사 3년간 휴전선언`을 권유하고 싶다. 노사 3년간 휴전선언이 이뤄지면 외국의 장기투자가 크게 증진되고 실업자를 흡수하여 국가경쟁력을 비약시킬 것이다.
<김영호(경북대 교수ㆍ전 산업자원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