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96증시 취재기자 방담/경기침체… 수급불안… 노동법 파동…

◎주가 4년전으로 뒷걸음 ‘투자자 우울’/정부역할 축소 「제도개선안」 자율증시 첫발/3분기에만 2조5천억 공급… 반등시도 무위로/“경기관련주 피하자” 개별종목 유례없는 강세/10대그룹 계열사에도 M&A 열풍 “재계경악”/“신용만기 연장 등 어설픈 부양책 지수추락 부채질”/“경기호전 불투명 대선 등도 걸림돌 내년 증시 회색빛”96년 주식시장은 경기침체와 수급불안으로 연중내내 침체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한 우울한 한해였다. 연초 8백88.85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는 연말 6백51.22포인트로 마감돼 연초보다 주가지수가 무려 2백37.63포인트나 하락했다. 더구나 연말 폐장지수는 연중최저치를 기록하는 증시사상 유례없는 상황이 연출돼 투자자들을 더욱 침통하게 했다. 그동안 취재일선에서 피부로 느낀 증시 상황을 정리해본다.<편집자주> □참석자 명단 이종승(증권부장,사회) 장린영(증권부기자) 김형기( 〃 기자) 정완주( 〃 기자) 최상길( 〃 기자) 정재홍( 〃 기자) 임석훈( 〃 기자) 김희석( 〃 기자) 정명수( 〃 기자) 강룡( 〃 기자) 때:1996.12.28 장소:편집국회의실 ▲사회=먼저 올해 주식시장을 정리해 봅시다. ­경기침체와 수급불안으로 주식시장이 침체를 면치못한 한해였습니다. 경기부진으로 대형우량주의 주가가 3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수급불균형의 심화속에 저가대형주의 낙폭이 심화됐습니다. 또 증권가 루머조사설 등으로 개별종목들도 급락을 거듭했죠. ­1·4분기까지만해도 경기 연착륙이 가능하리라는 견해가 우세한 가운데 주식시장도 낙관적인 전망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4·11총선이 끝나자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면서 서서히 침체기로 빠져들었고 폐장무렵 여당이 노동관계법을 날치기 통과시키자 주식시장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 ­주식시장이 침체를 보일 때마다 매수에 나섰던 증안기금이 해체되고 정부도 증시 자율성강화를 부르짖으며 관심을 보이지 않자 투자심리는 더욱 얼어붙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손해를 본 일반투자자들은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말못할 사정을 털어놓으며 통곡하기도 했습니다.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고 가족몰래 주식투자를 하다 주가폭락으로 가정파탄에 이른 사례도 있었습니다. ▲사회=주식시장의 리듬이 완전히 와해된 것 같습니다. 또 증권유관기관들도 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난 느낌입니다. ­우선 정부가 증시안정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주식시장이 반등할 때마다 정부는 공급물량을 확대하며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외국인 한도확대와 자금시장 안정으로 투자분위기가 회복되며 지수 1천포인트 돌파를 눈앞에 두고 정부는 공기업매각 등 3·4분기 공급물량 확대를 들고 나왔죠. 분기별로 볼때 6년만에 최대규모인 2조5천억원을 쏟아붓겠다고 하자 모처럼 활기를 되찾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그나마 나왔던 부양책도 시기를 제대로 맞추질 못했습니다. 부양책이 나온다는 기대감에 반등기미를 보이다가도 막상 나오면 후속매수세가 따르지 못하고 실망매물만 나왔습니다. 이러다보니 정부의 부양책은 약발이 떨어졌죠. ­도리어 어설픈 부양책이나 규제완화는 주가지수 추락을 가속시켰습니다. 신용만기연장과 2부종목에 대한 신용허용 및 주식가격제한폭 확대는 하반기 침체의 수렁에서 빠지나오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단편적인 부양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높습니다. 숨어 있는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유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거죠. 현재 사채시장을 돌아다니거나 사장된 돈이 수조원에 달한다는 겁니다. ▲사회=결국 정치논리가 주가하락을 부채질한 것 아닙니까. ­종합주가지수가 문민정부 출범당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올들어 정부는 어려운 경제를 살리려기 보다는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에 역점을 뒀습니다. 무리하게 금리안정화를 유도했지만 실패로 끝나 이를 믿고 채권투자한 증권사 등 기관들이 덤터기를 썼죠. 소비억제와 저축증대 차원에서 부활시킨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했던 사람들도 주가하락으로 주름이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판 빅뱅」으로 불리는 증권제도개선안이 마련됐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정부의 주식공급물량 조절제도를 폐지하고 가격결정의 자율화를 꾀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 합니다. 또 공개와 증자요건을 강화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구비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증시주변여건의 악화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장기적으로 주식시장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올해는 유난히 개별종목의 강세가 돋보였습니다. ­경기침체로 경기관련주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했습니다. 특허관련, 신기술이나 신제품 개발관련주, 정보통신주, M&A(Mergers and Acquisitions:기업인수합병)주 등이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순환하며 꾸준히 장세를 이끌었습니다. ­개별종목들의 강세속에 숱한 유행어도 난무했습니다. 기업의 내재가치나 실적보다는 그 종목에 대해 어느 세력이 관심을 갖고 있나, 즉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세력가치」가 매겨졌습니다. 블루칩(대형우량주)이 죽을 쑤는 가운데 블랙칩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폐광지역을 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수혜가 기대되는 강원도에 탄광을 보유한 기업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외에 「봉선화5인방」이니 「연어주」니 하는 말도 한동안 증권가에 회자됐습니다. ­개별종목들이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작전조사나 루머근절소식이 전해지며 투자심리가 급랭해지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사정스케줄에 따라 검찰이나 증권당국은 개별종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특히 백원구 원장의 구속후 증권감독기관은 주식시장 침체에 아랑곳 없다는 듯 시도때도없이 작전조사에 나서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펀드매니저들도 고생이 심했습니다. 개별종목에 손대면 임원이나 증권당국의 눈치가 심상치 않고 대형주나 우량주는 재미볼 가망이 없는 상황이라 딜레마에 빠진 것이죠. ▲사회=올해는 정부가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했어도 기업들의 부도사태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부도로 시작해서 부도로 끝난 한 해였습니다. 연초들어 대형 건설업체인 우성건설이 부도로 한일그룹에 넘어갔습니다. 이어 건영이 부도를 냈고 폐장을 일주일 앞두고는 중견건설업체인 (주)동신도 부도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건설업체의 부도가 닥칠 때마다 해당기업은 물론, 주택건설업체와 주거래은행의 주가는 곤두박질쳤죠. 그래서 연말에는 액면가(5천원) 아래로 떨어진 은행주들이 속출했습니다. ­자금사정 악화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가운데서도 일부 대주주들은 세금절약을 위해 증여와 취소를 반복해 눈총을 샀습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대주주가 주가 올라가는 것을 꺼리는 기업의 주식을 어떻게 살 수가 있냐며 비난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회= 올해 증권시장에서 M&A열풍이 어느해 보다도 거셌습니다. ­내년 4월부터 증권거래법 200조가 폐지되고 공개매수요건이 까다로워질 것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진행되던 M&A가 한화종금건이 불거지며 경제계를 강타했습니다. 소액주주들을 모아 10대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그것도 돈주머니를 내놓으라고 나오니 재계가 경악했습니다. 또 지방소주 3사가 1백년역사를 가진 두산그룹의 주력기업인 오비맥주에 대해 장부열람권을 요구하고 나서 화제가 됐습니다. 급기야 재계가 나서 정부에 M&A요건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올들어서만 고니정밀, 영우통상, 군자산업 등 무려 20개기업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또 대한펄프의 소액투자자들이 임시주총을 요구하고 나서 화제가 됐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자기몫을 주장하고 나선점은 증시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외에 항도종금이 경쟁적 공개매수의 타깃이 됐고 신한종금의 지분확보 경쟁은 아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사회=올들어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확대가 두차례나 있었죠. ­4월과 10월에 한도를 추가로 확대하며 20%까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국내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20%에 그치지 않았죠. 외국인이 판다는 소문만 나돌면 하한가로 곤두박질치기가 일쑤였습니다. ­이러자 일각에서는 외국인들의 비관적인 전망이 주식시장 침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며 비난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주식시장을 그나마 지켜준 것은 외국인이었습니다. 국내 기관투자가나 개인들이 올해 각각 2조, 1조5천억원씩 순매도 했지만 외국인들은 3조원어치를 순매수해 그나마 주가를 바친 셈입니다. ­외국인들은 또 주가지수선물과 연계해 현물을 처분, 주가지수가 한순간에 급락하며 주식시장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꼬리가 몸체를 흔든다」는 선물시장의 속담을 실감나게 했죠. 선물시장 도입때 우려됐던 외국인의 시장교란이 현실로 나타나 재발방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증권가에서는 파생상품의 도입시기가 빨랐다는 시각과 선진시장을 학습하는 수업료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견으로 엇갈렸지만 결국 선물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 계기가 됐습니다. ▲사회=내년 주식시장 전망은. ­경기가 언제 바닥을 찍느냐가 관건입니다. 지금으로선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크게 나아질게 없다는 전망이 우세한 편입니다. 또 노동법관계법 개정에 따른 사회 갈등심화, 대선을 앞둔 정치불안 등이 주식시장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정부가 약속했던 내년 상반기중 한통주상장도 수급불안을 야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내년 연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경제성적표인 주가지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정리=김희석>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