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수출전선 경고등] 대일 수출액 한달새 24% 곤두박질… 빛바랜 무역1조 시대

엔저·유가급락 악재에 일부 업종 채산성 악화<br>환율 100엔당 900원 땐 총수출 8%나 줄어들어<br>불황형 흑자구조 깨려면 신흥시장으로 눈돌려야

올해 우리나라가 가장 짧은 시간에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가운데 한밤중에도 수출입 물량을 싣는 부산 신선대부두가 한낮처럼 밝다. /서울경제DB


무역규모 1조달러 조기 달성에도 불구하고 수출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주요국의 경기부진과 엔저, 저유가에 따른 일부 업종의 채산성 악화 등 대내외 여건이 좋지 못한 것이 문제다. 지난달 수출은 -1.9%, 수입은 -4.0%로 수출과 수입 모두 감소했다. 1월 이후 처음인데다 수입이 수출보다 더 줄어든 탓에 불황형 흑자의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1조달러 의미 크나 '낙수효과' 없어=물론 무역규모 1조달러는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이 지난 1992년에 처음 달성한 후 독일(1998년), 중국·일본(2004년), 프랑스(2006년), 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2007년)에 이어 우리나라(2011년)가 세계에서 9번째로 달성했다. 4년 연속 1조달러를 달성한데다 올해는 그 시기를 지난해보다 무려 8일이나 앞당겼다. 그만큼 올해 교역이 활발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무역수지 34개월 연속 흑자도 수출 전선에 청신호로 읽힌다.

무역규모 1조달러를 조기에 달성한 것은 주요 경제권과 잇따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경제영토'를 넓혀나간 성과로 풀이된다. 글로벌 무역 둔화와 엔저 등 대외 경제여건 악화 속에서 일궈낸 값진 성과라는 게 정부의 평가다. 권평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조업일수가 하루 줄어 수출입 규모는 감소했다"면서도 "전체적으로 FTA 국가로의 수출 증가가 호조세를 견인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비용이 줄어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현 추세대로라면 사상 최대 무역규모·수출규모·무역흑자를 기록해 지난해에 이어 무역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주요 품목들의 수출 증가와 중소·중견기업들의 수출 호조를 1조달러 조기 달성의 주요인으로 분석했다. 올 1~11월의 국내 수출 증가율은 세계 교역 증가율(1.9%) 둔화 속에서도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한 2.4%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16.7%), 철강(13.3%), 일반기계(2.8%), 컴퓨터(1.7%)가 증가했고 가전(-28.0%), 석유제품(21.6%), 섬유류(-13.7%), 자동차부품(-9.3%) 등이 줄었다. 다만 무역규모 성장의 과실이 국내 경제로 파급되는 낙수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면 생산량이 늘고 고용이 창출되는 구조가 1990년대 이후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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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국 쏠림 심화 때는 "불황형 흑자 고착화 우려"=업종별·지역별 전망은 어둡다. 업종별로는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석유제품이 21.6% 감소했고 주력품목인 자동차(-5.5%)와 무선통신기기(-4.3%)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역을 보면 대미 수출이 20.8% 늘어 2개월 연속 20%를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미국 내수 경기의 호조로 대미 수출은 9월 19.8%, 10월 24.9%, 11월 20.8%로 나 홀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대중 수출은 8월 -3.2%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고 일본은 엔저의 영향으로 수출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이 때문에 불황형 흑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불황형 흑자는 경기가 불황기에 접어들었을 때 수출입이 함께 둔화되면서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들어 흑자폭이 확대되는 것이다. 일단 반도체와 철강을 제외하면 마땅히 믿을 만한 수출 품목이 없는데다 유가 하락으로 주력 상품의 하나인 석유제품 수출의 감소세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증가세 둔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중소·중견기업이 중심이 되는 수출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중국으로 편중된 수출 전략을 수정하고 신흥시장 개척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수출 주요국의 경기하강 국면과 맞물려 실적이 떨어졌다"며 "가공무역 중심의 수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격차가 갈수록 줄어들어 현지 시장에서 한국의 부품소재를 중국 제품들이 대체하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환율은 시차를 두고 영향이 나타난다"며 "중국 중심의 수출 정책에서 벗어나 미국 시장을 더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지금 구조대로라면 수입이 더 줄어들어 불황형 흑자가 고착화될 수 있다"며 "지금 당장 흑자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11월 조업일수 및 유가 영향으로 수출입이 모두 감소했으나 수출의 경우 일 평균 수출은 전년 대비 늘고 있고 수입은 유가 하락의 영향을 받은 원자재를 제외한 자본재와 소비재가 증가하고 있어 불황형 흑자로 보기는 곤란하다고 평가했다. 권 실장은 "업종별로 나눠 실제 산업 현장에서 내다보는 내년 수출 전망을 파악할 것"이라며 "파악된 내용을 토대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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