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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정부가 설계하고 실행계획을 수립한 주요 정책과 국정 어젠다들이 의회권력, 특히 비박계가 당권을 잡은 새누리당으로 속속 넘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무성 당 대표를 비롯해 새로 진용을 구축한 유승민 원내대표와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청와대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는 '집사'가 아니라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 아닌 민심(民心)을 따라 주요 정책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력의 축이 청와대에서 당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권력 패러다임'도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제동 걸리나=증세 없는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이었고 복지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금과옥조로 지켜온 국정철학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가 변경된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근간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뒷받침해왔던 새누리당이 이제는 '증세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김 대표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가 연말정산 세법을 개정하고 담뱃세를 올리고 지방세도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결국 증세인데 이를 증세가 아니라는 논리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지 않는 것은 증세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새누리당이 "진실이 아니다"라며 정책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비과세 및 감면혜택을 축소해 충분히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이 사실상 허언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고해성사'를 하고 증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회가 법인세·부가가치세 인상 주도할 듯=새누리당은 증세라는 방향성을 정해놓은데다 세부 액션플랜도 숨기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법인세·부가가치세·소득세 등 성역 없이 증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경제팀으로서는 지금까지 '금기어'로 여겨졌던 증세 내용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 같은 증세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연말정산, 담뱃세, 건보료 개편 논란 등 꼼수를 쓰다가는 민심이반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부가가치세를 높이면 내수소비가 줄어드는 등 부작용과 문제점이 많다"면서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핵심 공약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느냐"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청와대의 입장을 지지하고 지탱해줬던 새누리당이 지도부가 교체되면서 이제는 원군이 아니라 대항군이 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지도부가 앞으로 야당과 증세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어 증세를 둘러싼 논의도 청와대에서 국회로 무게추가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결국 세법을 개정하고 수정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고 몫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서민층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 증세 등에 대해 야당과 공동 보조를 취할 경우 증세는 자연스럽게 실행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력추의 중심이동 현상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국민들에게 혼란과 혼선을 안겨준 건보료 개편 방안을 당장 논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자 정부는 개편논의를 중단한 지 6일 만에 다시 연내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연말정산 세금폭탄에 이어 건보료 논란이 불거지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새로 구축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강경하게 건보료 개선 방안을 요청하자 당의 입장을 십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