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0월 9일] <1521> 항해법


'국적선에 실리지 않은 물품의 수입을 금지한다. 단 물품을 제조한 유럽 국가가 직접 자국선으로 운송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1651년 10월9일, 영국 의회가 결의한 항해법의 골자다. '항해조례'로도 통용되는 이 법의 11개 조문에 담긴 독점주의는 주변국들의 반발을 불렀다. 특히 중계무역으로 번성하던 네덜란드의 분노가 극에 달해 1년 뒤 1차 영란전쟁으로 번졌다. 각국의 불만과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복귀하는 내부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영국은 항해법을 강화했다. '영국 해운의 대헌장'으로 불리는 1660년의 항해법에는 특정 상품에 대한 규제와 연안무역 독점, 영국인 선원 비율까지 집어넣었다. 결과는 새로운 전쟁. 항해법을 둘러싸고 치러진 세 차례의 영란전쟁으로 네덜란드는 북미 지역의 상업기반을 잃었다. 영국에 빼앗긴 뉴암스테르담의 이름은 뉴욕으로 바뀌었다. 아메리카 식민지도 고통을 겪었다. 영국 항구에 기항해야만 유럽 국가와의 교역이 가능해 수송 비용과 관세ㆍ보험료가 늘어났다. 아메리카의 불만은 독립전쟁의 원인으로도 작용했지만 항해법은 1853년 완전 폐지되기 전까지 140여차례 개정되는 등 202년간 존속하며 영국 해운업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영국이 항해법을 폐기한 이유는 해운은 물론 제조업에서도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춰 보호무역보다 자유무역이 유리하다는 자신감에 찬 계산 때문. 각국은 영국을 뒤따라 비슷한 법을 없앴으나 유독 한 나라에서 20세기에 되살아났다. 1차대전 이후 남아 도는 해군 수송함과 제대군인을 배려한다며 '연안 여객과 화물 운송은 자국 선주와 선원이 운영하는 국적선이어야 한다는 존스법을 제정(1920년)한 미국이다. 불평등 법규를 규탄하는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의 지적에도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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