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GOLF엿보기] 37,58,95

[GOLF엿보기] 37,58,95박순환(경기도한의사회 명예회장) 환상적인 출발이었다. 드라이버로 280야드 빨래줄 같은 샷을 날리고 피칭으로 홀에 붙여 첫 홀에서 버디를 잡았고 이어서 연속 줄 파(PAR)를 했다. 절정은 7번홀 160야드 파 3홀에서였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니 홀인원 경품을 선전하는 홍보간판이 눈에 확 띄는 게 큰 일을 낼 것만 같았다. 티 샷한 볼을 보고 굿샷하던 동반자들이 별안간 홀인원이라고 환호성을 질렸는데 홀쪽으로 구르던 볼이 아쉽게 핀대를 맞고 비켜섰다. 『아! 이런게 골프구나』 싶은 게 가슴이 터질 듯 벅찼다. 버디는 OK가 없다고 해서 퍼팅을 했는데 흥분된 마음에 버디를 놓치고 파를 했다. 아쉬움 마음으로 플레이를 해서일까 남은 두 홀은 연속 보기였다. 그러나 아웃코스에서 버디1개, 보기2개로 37타. 인코스는 늘 잘 쳤으니까 이런 컨디션이라면 꿈에 그리던 70대 초반의 베스트 스코어는 떼논 당상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늘집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인코스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0번홀 티 샷을 할 때부터 온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게 말을 듣지 않는다. 드라이버 샷은 150야드도 못나가고, 벙커에서는 털석털석, 그린 가까이 가서도 뒤땅 아니면 생크, 퍼터는 아무리 세게 쳐도 홀에 못미쳤다. 넓고 훤하던 페어웨이는 안개속처럼 희미하고 다정하던 동반자와 친절하던 캐디는 한없이 얄밉고 보기도 싫으며 온몸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홀마다 양파 아니면 더블보기를 했는데 인코스에서는 58타고, 그래서 오늘 95타를 쳤다는 캐디의 말에 「악!」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집사람이 흔들어 깨우면서 골프를 칠 때는 욕심을 버리라고 한마디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골프약속이 있으면 아직도 소풍가는 아이처럼 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래서 술을 조금 한다든지, 더운물 목욕을 한다든지 별 방법을 다 써봐도 잠은 쉽게 안오고 머리속엔 온통 골프장 뿐이다. 홀마다 버디와 파를 번갈아 잡는 상상만 떠오르고 야속하게 깊은 잠을 못자고 자다깨다 자다깨다 하는데 잠깐 자는 사이에 꿈을 꾼 모양이다. 골프가 얼마나 어려우면 가정도 친구도 직장도 멀리하고 오직 골프만 해야 70대가 된다는 말이 있을까. 남다른 재능이나 지독한 연습이 없이는 싱글은 못되지만 그래도 가정과 친구와 직장에서 인정받으면서 골프도 찰 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필드로 나간다. 입력시간 2000/06/18 21:19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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