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해결 정부가 나서야”/채권 금융기관만으론 해결 어려워/「유예협약」 대상기관 확대등 보완을/종금 조건부 특융보다 안정적 자금공급이 중요『기아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채권금융기관에 맡겨서는 국민경제적 관점에서의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아사태에 연루된 한 금융기관의 대표로서 한근환 신한종금사장이 내놓은 기아사태의 해결방안이다. 한사장은 부도유예협약과 관련, 금융위기 상황에서 부도유예협약의 존속은 불가피하지만 의사결정과정에 금융기관들의 참여폭을 넓히고 협약참가 대상금융기관에 증권·보험·리스사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사장은 또 현재와 같은 위기상황은 종금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금융기관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아사태로 인해 경제주체들간의 신뢰관계가 무너진데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들어 종금업계가 전반적으로 위기상황에 빠진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먼저 종금업계가 위기상황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습니다. 과거 70년대처럼 금융기관이라 하면 은행이 주축이 되고 여타 금융기관들은 부수적인 위치에 머물렀던 상황에서는 금융계내 한 업계의 위기라는 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금융권 전체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상황에서는 한 업계의 위기는 곧 금융권 전체의 위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종금사의 여수신규모가 이미 시중은행의 3분의 1 크기에 달하고 있는 점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금융계가 전체적으로 위기국면에 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기아사태에 기인합니다. 기아사태의 특징은 처음으로 국내 10대 대기업이 쓰러졌다는데 있습니다.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지면서 금융기관과 기업, 그리고 금융기관간에 있어서도 서로 믿지 않는 불신풍조가 극도에 달하게 된 것입니다. 기아사태로 인해 경제내의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깨진 것이지요.
-최근의 대기업 자금난의 주범으로 종금사들이 주목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종금업계에 종사하는 당사자로서 하실 말씀이 있을텐데.
▲그동안 여론에서 기업 자금난의 원흉이 종금사인 것처럼 지목돼 왔는데 사실 억울합니다. 일각에서는 종금사들이 보유한 CP를 무작정 교환에 회부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를 막지 못해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CP시장에 대한 이해부족에 기인합니다.
지난 7월말 현재 전체 CP발행잔액은 85조원에 이릅니다. 이중 종금사가 보유한 CP는 20조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65조원은 은행신탁이나 투신 등 기관투자가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은행신탁이 65조원의 70%가량을 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실명제로 개인이나 금융기관들이 CP를 매입하더라도 그 실물은 종금사가 보관하도록 한데 있습니다. 원래 CP의 소유주들은 CP의 만기상환을 받기 위해서는 만기 하루전에 실물을 찾아서 어음교환소를 통해 교환에 회부해야 하지만 은행신탁은 이를 종금사들이 대신토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CP의 원소유주인 은행신탁이 CP 만기에 자금을 회수할 경우 어음의 교환은 종금사 명의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제에 이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금융기관이 CP를 매입할 경우 실물을 원소유주가 보관토록 정부에 제도개선을 건의할 방침입니다.
-금융기관들의 기존의 금융관행에 반성할 점도 있다고 판단되는데요.
▲그동안 우리 금융계의 대출관행은 담보우선주의, 그리고 대기업 우선주의였습니다. 사실 어느 누가 재계서열 8대기업인 기아그룹이 이 지경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기아사태에 연루된 금융기관만도 1백60개에 이릅니다. 기존의 금융관행에 대해 절실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죠.
-정부가 최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종금사에 대해 조건부 특융을 제시했습니다. 종금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상당한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종금업계를 지원하려는 의지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과 같은 전제조건으로 저리의 자금을 지원받을 경우 해당 종금사들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받아 오히려 역작용이 나타날 우려도 있습니다. 종금업계가 원하는 것은 수지개선을 위한 낮은 금리의 자금이 아닙니다. 종금업계의 손익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부가 실세금리로라도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면 자금시장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부가 최근 부도유예협약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도유예협약을 페지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이를 보완해야 할지 의견을 개진해주십시오.
▲부도유예협약은 기업이 자금난을 겪는 상황에서 이에 연루된 많은 금융기관들이 각자 개별적인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성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게 함으로써 사태의 해결을 가급적 합리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처럼 금융계가 불안한 상황에서 부도유예협약은 상당히 의미있는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기아문제와 관련해서는 운용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의사결정과정에도 허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가 있는 기업을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선정하기 전에 경영권 포기각서 등의 사안을 먼저 처리해야 하며 현재 은행주도로 돼 있는 의사결정과정을 모든 해당 금융기관으로 확대하고 참여기관도 증권,리스,보험사까지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를 폐지하는 것은 옳은 정책방향이 아니라고 봅니다.
-기아관련 여신을 보유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기아사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선홍회장을 비롯한 측근 경영진들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합니다. 김회장의 경영방식은 본질적으로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시적으로 덮어두는 대증적 처방의 경영이었습니다. 기아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현 경영진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노조의 경우에 있어서도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보다는 회사를 구한다는 생각으로 동의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기아사태 해결의 핵심은 정부가 그 해결을 채권금융단에만 맡길게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권금융단은 국민경제적인 차원보다는 여신회수라는 관점에서 기아사태를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가가 기아사태에 개입할 경우 WTO(세계무역기구)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문제삼을 수 있다고 밝히지만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김상석 기자>
◇약력
▲경북 성주 출생(57세) ▲서울대 경제학과 ▲재무부 금융제도심의관실 과장 ▲국제상사 부사장 ▲국제방직 사장 ▲대우증권 부사장 ▲영흥철강 사장 ▲두양그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