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 총기 난사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찰관이 방탄복도 없이 테이저건으로 제압하려다 피의자가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참극이 벌어졌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처음 신고한 것으로 알려진 조모씨는 이날 아침부터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 근처에서 보수공사를 하던 중 용의자 전모(75)씨와 전씨의 형수가 다투는 장면을 목격했다. 조씨가 "어르신들끼리 너무 심하게 싸운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만큼 큰소리로 다투던 이들은 얼마 후 단독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등으로 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던 조씨의 눈에 전씨 손에 들린 엽총이 들어온 것도 이 순간이다. 조씨는 "큰소리로 다퉜지만 귀담아듣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르겠다"며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갈 때 남자 손에 총이 들려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그로부터 1∼2분도 지나지 않아서 두 발의 총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란 조씨가 단독주택을 쳐다보니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2층 베란다로 뛰쳐나왔다. 숨진 전씨 형 부부의 며느리인 이 여성은 조씨를 향해 "신고해달라"고 외쳤고 조씨는 오전9시34분께 119에 신고했다. 조씨 신고를 받은 화성서부경찰서 남양파출소 소속 이강석 경감(소장)과 이모 순경은 4분 뒤인 오전9시38분께 현장에 도착해 출입문을 열고 진입을 시도했지만 전씨는 사냥용 엽총을 발사해 "들어오지 말라"며 경고했다. 그때 이 경감이 전씨를 설득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재차 시도하다가 전씨가 쏜 총에 맞아 안쪽으로 쓰러져 숨졌다. 당시 이 경감은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았으며 실탄이 든 권총이 아닌 테이저건을 들고 현장 진입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현장 매뉴얼과 장비지급 기준에 따라 일반 경찰관이 입을 방탄복은 없었기 때문에 피의자가 쏜 총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총기 난사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필수적인 방탄복은 '대간첩 작전 및 대테러장비'로 분류돼 있어 지역 경찰들에게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장비지급 기준에 의한 지급대상은 타격대와 검문소 등이고 형사나 지역 경찰은 제외돼 있다. 현재 경기도 내에는 타격대별로 11개의 방탄복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지역경찰서와 지구대 및 파출소에는 1.3㎏에 달하는 방검복(칼과 같은 날카로운 흉기에 찔렸을 때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조끼모형의 장비)만 지급돼 있다. 규모에 따라 지구대는 4개, 파출소는 2개씩 보유하고 있으며 순찰 시 차에는 2개를 놓고 순찰하고 있다. 이 경감의 안타까운 소식에 지인들은 "주민들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면 제일 먼저 발 벗고 나서는 경찰관이었다"며 비통해 했다.
전씨는 이후 범행에 사용한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며느리는 2층에서 뛰어내려 허리 등을 다쳐 현재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격리조치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단독주택 옆 빌라 주차장에 세워진 전씨의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에서 발견된 형에 대한 오래된 원망과 반감이 담긴 유서와 유족, 신고자 조씨, 이웃 주민 등의 진술을 토대로 재산 문제 등 형제간 불화가 사건의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