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위기의 금융시장/부문별 긴급점검

◎경기·자금·외환불안 “삼중고” 시름◇증권/동남아 악재 겹쳐 외자 썰물/고객예탁금도 2천억 감소/당분간 6백60∼6백80선 주가하락을 저지하기 위한 정부의 증시안정화 조치에도 주가가 연일 큰폭으로 하락, 종합주가지수가 3개월 보름만에 7백포인트 밑으로 내려갔다. 주말인 지난 30일 주식시장은 외국인투자가들의 대량매도가 이어지고 일부 그룹의 자금악화설이 확산돼 전날보다 8.90포인트 하락한 6백95.37포인트로 마감됐다. 주가지수가 7백포인트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5월16일 이후 처음이다. 주가지수는 지난주 내내 하락세를 보였으며 최근 3일만에 35포인트의 낙폭을 기록했다. 지난 8월11일 종가인 7백65.07포인트와 비교하면 16일만에 70포인트 (9.2%)가 떨어졌다. 최근 주가지수가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금리와 환율상승 등 국내금융시장의 불안정 ▲잇따른 자금악화설 ▲동남아주식시장의 동반하락 ▲엔화의 약세반전 ▲고객예탁금의 감소 등의 악재로 주식시장의 기반이 취약해진 데다 지난 28일부터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식매도물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투자가들은 지난 29일 5백69억원, 30일 2백50억원 등 이틀 동안 시중은행과 LG전자, 현대전자, 한전 등을 중심으로 8백19억원을 순매도해 주식시장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이에 대해 증권전문가들은 『동남아증시위기에다 국내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외국인투자가들이 동남아시아주식과 함께 국내주식투자의 비중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식매수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2조8천3백50억원으로 8월초에 비해 2천억원이상 줄어든데 비해 외상매입대금인 신용매수잔액은 3조3천4백18억원으로 고객예탁금과의 격차가 5천억원을 웃돌아 수급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 강창희 대우증권 상무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외국계펀드의 경우 동남아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들어오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비교적 환금성이 보장된 국내 주식을 처분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87년10월 미국의 주식시장이 공황상태로 치닫던 블랙먼데이 당시에도 미국 투자자들의 대규모 펀드 해약이 발생하면서 이를 보전해주기 위해 환금성이 있는 일본 증시의 주식들을 내다 팔아 동경주가를 동반 폭락시킨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내 자금시장의 불안정과 환율급등도 외국인들의 국내주식매도배경으로 거론된다. 시중 자금시장의 주요 지표인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30일 현재 연리 12.16%에 거래돼 연중최저치인 지난 6월9일의 11.38%에 비해 0.8%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김경신 대유증권 경제연구소 이사는 『기업들의 잇단 부도후유증으로 채권유통시장의 경우 대그룹 계열사 채권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전통적으로 자금수요가 집중되는 추석전까지는 이같은 자금시장 불안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주식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열악하지만 증권 전문가들은 국내주식시장이 동남아국가들과 같은 폭락세를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상무는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 현상은 국내 주식시장의 여건 악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 외환위기에 몰린 동남아 각국의 주가폭락에 기인한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지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줄어들면 곧바로 진정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원화환율에 대한 개입의사를 분명히 밝힌 상황에서 동남아국가와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며 『시중 유동자금은 여전히 풍부한 상태에서 외국인 투매만 진정되면 정부의 증시 안정화조치가 효력을 발휘, 추석을 전후해 반등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추석자금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추가적인 주가조정은 불가피하며 주가지수 6백60∼6백80포인트 부근에서 하락세가 저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김형기 기자> ◇재계/3·4분기 투자 재조정 “비상체제”/불요불급 부동산 처분, 재무구조 개선 주력 재계는 부도사태속 신용위기에 증시·환율까지 불안해지면서 부실기업의 도산뿐 아니라 흑자기업까지 침몰할 수 있는 복합불황의 가능성이 높다며 깊은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상위 몇대 그룹을 제외하곤, 어느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기업들은 경영환경중 어느 것 하나 청신호를 보내는 것이 없고, 온통 빨간 불이 켜졌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부도사태로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자금줄은 더욱 고갈되고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환율급등으로 환차손은 눈덩이처럼 커져 수출 채산성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증시에선 주식의 대폭락세가 이어지면서 회사채 및 주식발행계획이 커다란 차질을 빚고 있다. 대외이미지 추락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자금조달 코스트가 급등하고, 그나마 자금확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가 부도유예협약제도 폐지를 검토키로 한데도 기업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김태일 전경련이사는 『갑작스런 부도유예협약 폐지 검토로 기업의 연쇄부도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당분간 이 제도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경제가 벼랑끝에 몰린 것은 정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이 부채질했다며 늑장행정에 불만을 터뜨린다. 그동안 관치금융 등으로 관주도 경제에 길들여진 우리경제의 속성상 정부의 개입과 지원이 필수적인데도 부도사태가 커지자 정작 시장자율을 내세워 경영난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증시에서 악성루머가 춤을 추고, 루머의 희생양이 된 기업에는 마녀사냥식 어음회수가 이뤄져 건전한 기업까지 무더기로 흑자도산할 수 있는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마치 호미로 막을 일을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최악의 경제파탄국면을 가져왔다는게 기업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화대책」도 경제위기를 진정시키는데 크게 미흡하다고 본다. 금융시장안정화대책도 기업들의 신용불안 해소 및 자금조달 원활화대책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이같은 불황속 금융 외환시장의 대위기에 대응, 3·4분기 이후 투자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삼성·현대·LG·대우·선경 등 대부분의 그룹들이 신규투자는 동결하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철수하는 등 사업구조 재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불요불급한 부동산 등은 가능한 한 최대한 처분,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또 경비절감 목표를 더욱 확대하는 등 초긴축경영으로 살아남기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중하위 그룹들은 내년 이후의 중장기계획은 고사하고 당장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재계는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강도높게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경련 회장단이 제의한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구조조정과 자구노력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의 난립과 이에 따른 경제논리의 실종으로 불황이 더욱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또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대기업 정책도 3∼4년 후 호황기때 도입하고, 현재는 종합적인 단기 부양책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업의 활력을 제고하고 투자마인드를 북돋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고 있다.<이의춘 기자> ◇자금/정부대책 비웃듯 금리 고공행진/획기적 조치 없으면 회복불능 우려 정부의 금융시장안정화대책 이후 금융시장이 오히려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다. 장기금리인 3년만기 회사채금리는 지난 8월초 12%대에 진입한 이후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고 콜금리와 양도성예금증서(CD)는 13%대에 머물고 있다. 또 기업들이 초단기로 빌어쓰는 당좌대출금리는 지난 27일 이후 14%대에 올라서는 등 자금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같이 금리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것은 보름 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앞두고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발표된 정부의 금융시장안정대책에 대한 금융권의 실망 분위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현행 부도유예협약의 폐지 등을 검토하고 나섬에 따라 자금난에 시달리는 일부 부실기업의 부도설이 다시 고개를 들며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경색되고 있다. 또 한달 앞으로 다가온 기아사태의 처리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극한 대립상태가 지속되면서 기아그룹이 전격 부도처리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도 자금시장이 움츠러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 금융권의 경색원인은 자금수급상의 문제라기보다 심리적인 불안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금융시장안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의지가 없는 한 자금경색현상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오는 9월초로 예정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국내은행에 대한 신용평가 결과, 등급이 하향조정될 경우 외환위기마저 겹쳐 국내 자금시장은 회복하기 어려운 국면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이형주 기자> ◇외환/원화폭락 우려감 여전 “살얼음판”/국제환투기꾼 핫머니 공략가능성 외환시장은 한마디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지난 25일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9백선을 올라선데 이어 26일에는 9백10선마저 위협했던 원화의 대미달러환율은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 불안심리가 팽배해 있고 경상수지적자도 여전해 여전히 급등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재정경제원이 지난 27일 이례적으로 환율에 대한 평가와 대책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선 것도 이같은 외환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시장참가자들이 정부의 정책의지와 능력을 믿지 못하는데 있다. 한은의 외환보유액이 3백억달러 내외밖에 안돼 방어능력이 회의적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한국이 국제 환투기꾼들의 공략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난 27일 미 CNN은 한국 외환시장이 원화가치 하락이익을 겨냥한 헤지펀드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국내 경제규모나 자본시장개방정도 등을 감안할 때 국내 금융시장이 동남아국가들처럼 쉽게 핫머니들에 쉽게 공격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외환보유액과 거시경제의 불안현상이 지속될 경우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핫머니의 대대적인 공격은 아니더라도 시험대상이 될 여지는 많다. 핫머니의 대명사인 조지소로스자금이 벌써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 정보도 들린다. 실제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처럼 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해 있으니 자연 환율의 움직임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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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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