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ㆍ31 대책’부터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저출산, 쌀 비준, 심지어 테마파크, 영리병원 설립, 스크린쿼터까지….” 굵직굵직한 경제정책들이 잔뜩 꼬인 채 풀릴 기미가 없다. 이해당사자간 싸움이나 권력을 쥔 사람들의 이기심도 큰 문제이지만 정부부처간 의견조율도 제대로 안돼 전체적으로 현안을 이끌어갈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들어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어 분위기는 나쁘지 않지만 주요 현안들이 표류하면 ‘될 일도 안될 것’이라는 회의도 높아지고 있다. ◇안개 속 ‘3대 정책’=8ㆍ31 대책은 키를 쥔 여ㆍ야 정치권이 한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연내 입법화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회 재경위 조세소위는 지난주 4차례나 심의를 벌였지만 “벽을 대고 외치는 모습”만 되풀이됐다. 한나라당이 감세(減稅)안 수용을 조건으로 정부안에 협조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지만 여당은 거꾸로 소득ㆍ법인세율을 올리는 법안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또 지난해 말 통과된 종합부동산세법에 대해 축조심의(자구별 세부심의)를 할 것을 들고 나왔고 1가구 2주택 중과세율(50%)도 낮출 것을 제시해 도무지 접점이 안 보인다. 특히 종부세 납세시기가 12월인 만큼 법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천천히 심의하자고 나서 정부측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여당은 재경위원장을 한나라당이 맡고 있어 표결처리도 하기 힘들어 국회의장 직권상정 형식의 통과방안까지 거론돼 물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수개월째 끌어오고 있는 금산법도 마지막까지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여당은 21일 정책소의총을 열어 당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어떤 방안이 나와도 24일 정책의총에서 당론을 최종 확정할 때까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방안은 삼성카드와 삼성생명 모두 ‘5%룰’을 초과해 보유 중인 계열사 지분을 해소하도록 하는 ‘박영선 의원안’과 흡사한 것. 이는 카드의 초과지분은 강제 처분하고 생명 초과지분은 의결권만 제한하는 청와대의 분리대응안과 다른 것으로 당초 정부안은 송두리째 사라진 강경 방안이다. 이에 실용파들은 삼성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소급입법 등 위헌논란이 제기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아 최종 순간까지 진통은 이어질 전망이다. 정책 어젠다로 새롭게 내건 저출산 대책도 뒤뚱거리고 있다. 지난 9월로 예정됐던 정책 발표시기는 슬금슬금 늦춰지더니 연내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형편이다. 목적세 신설 방안이 원천 봉쇄됐고 조세감면 등을 줄여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저출산 문제를 통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한 저출산-고령화사회대책본부도 본부장 등 인력구성마저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흔들리는 서비스업 대책=서비스업 대책은 정부가 연말까지 끝내겠다며 의욕을 불태웠지만 접점 찾기는 고사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다는 평이다. 스크린쿼터의 경우 재정경제부 차관이 ‘축소 방안’을 내놓았다가 혼쭐이 난 데 이어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스크린쿼터를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다행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지만 영화인들의 극심한 반발 때문에 쌀 비준 문제 못지않게 최종 방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서비스업의 핵심 과제였던 수도권 내 테마파크 조성계획은 부처간 갈등 때문에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팔당댐 등 한강수계의 자연보전권역에는 6만㎡(2만평) 이상 시설 설치가 금지돼 있는 규제를 합리화, 테마파크를 조성하려 했지만 환경ㆍ건설교통부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최근 브리핑에서 이 문제에 대해 “환경 차원에서 문제제기가 있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언급해 갈등 조정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제주도에 국내외 영리 의료법인의 설치를 전면 허용하는 문제도 지난주 매듭지을 예정이었지만 허점이 발견돼 다시 늦춰졌다. 당의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ㆍ라식수술, 피부미용 등에 한해 허용하는 수정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종 방안이 나오더라도 이빨 빠진 대책이 될 확률이 높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