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만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미국의 3대항만인 롱비치항과 LA항, 뉴욕항의 하역시설은 우리나라의 부산항과 별반 다를게 없다. 미국 최대항인 롱비치항은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실적에서 세계 6위로 부산항(5위) 보다 작다. 롱비치항과 지리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LA항을 합쳐도 홍콩과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에 그친다.
그러나 항만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과 항만운영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부산항을 통해 수출입화물의 40%와 컨테이너화물의 90%가 처리되지만 미국은 특정항만의 의존도가 낮다.
미국 1, 2대 항만인 롱비치와 LA항의 미국 수출입 화물처리량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3위인 뉴욕항은 고작 7%만을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수많은 항구를 통해 이루어 진다.
이처럼 미국항만이 골고루 발달할 수 있는 것은 미국전체에 깔려 있는 엄청난 인프라 덕이다.
오종근(吳鍾根) 한진해운 보스톤지점장(부장)은 『바둑판 모양의 철도가 전국에 구축되어 있으며 어느 지방에서도 10~15분이면 주요도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날 수 있다』며 미국항만의 경쟁력은 철도, 도로 등 잘 발달되어 있는 사회간접망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吳지점장은 『이같은 인프라 때문에 미국은 망하기도 어려운 나라』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다.
실제 미국의 철도망은 세계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롱비치·LA를 출발점으로 남부와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남부캘리포니아 직통루트」와 시애틀을 기점으로 북부와 남·동부를 잇는 「북부운송루트」, 뉴욕과 시카고 등 동부지방의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동부연결수송루트」 등 3대 철도망이 미국전역에 몸속의 혈관처럼 깔려 있다. 이들 철도는 위로는 캐나다의 토론토와 몬트리얼, 아래로는 멕시코의 몬테레이를 거쳐 멕시코시티와도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거의 대부분 대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항만에서 고속도로로 다시 소비지로 곧바로 이어지는 물류망은 미국 항만의 뛰어난 경쟁력을 한눈에 보여준다. 아시아 등지에서 서부 지역의 관문인 롱비치와 LA항으로 들어온 화물중 절반 가량이 이단적 열차나 화물차에 실려 동부로 나가며 유럽 등지에서 동부지역의 뉴욕항으로 들어온 화물중 20% 이상이 서부로 이동을 한다.
이처럼 미국 항만의 경쟁력은 배후에 있는 거미줄 같은 철도와 고속도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엄청난 소비력을 지닌 소비도시를 배후에 두고 있는 것도 미국 항만의 경쟁력을 높이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의 주요항만은 대부분 1,000만명 이상의 인구를 갖춘 대도시를 배후에 두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인구와 국민소득이 각각 5배 이상이어서 소비에 대한 구매력이 세계 최대 수준이다. 따라서 자체 수요물량이 많아 미국으로 배들이 몰릴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항만들은 서로 건전한 경쟁관계를 형성하면서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특히 롱비치와 LA항은 하나의 커다란 항만을 LA시와 롱비치시가 분리·운영하면서 공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1908년 항만수입은 모두 항만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항만을 분리해 롱비치와 LA시에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양항간 화물유치 경쟁은 어느 항보다도 치열하다. 공존을 위해 서로 협력하지만 화물유치를 위해서는 경쟁을 하는 관계이다.
돈 와일리(48) 롱비치항 판매담당 이사는 『앞으로도 미국 최대항만의 위치를 지켜 나가기 위해 LA항과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어느 한쪽만 커지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으며 같이 커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같은 동반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하드웨어적인 강점만으로 미국이 세계 최고의 항만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항만은 부두시설을 민간에 임대해 운영하기 때문에 상업정신과 자유경쟁원리가 철저하다. 특히 고객 만족을 위한 서비스 마인드는 세계 어느 항만보다 잘 발달되어 있다.
윌리엄 F. 팰론 뉴욕항 항만통상국 판매담당 부장(39)은 5개국 문자로 된 명함을 가지고 있다가 뉴욕항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출신국에 따라 자국어로 된 명함을 내준다. 고객에 대한 작은 배려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자국어를 보면서 다른 곳보다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는 『지난 77년 이후 20여년간 단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며 『항만당국과 노조가 항구홍보를 위해 내년에 아시아를 순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 최대 항만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고객들의 서비스 만족에 더 우선권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롱비치항에서는 그날 그날 청사를 방문하는 고객들의 이름과 환영의 말을 현관에 붙여 놓는다. 방문객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섬세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 롱비치항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마인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한국어를 포함해 5개국어로 항만을 소개하는 비디오와 항만관련 각종 홍보물을 만들어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사실상 경쟁상대가 없는 세계 최고의 나라이며 영어는 이미 세계 공용어로 인정받고 있다. 또 미국이 가지고 있는 소비구매력과 이미 건설해 놓은 인프라만으로도 세계 각국의 배들이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 자만하지 않고 고객에게 한발이라도 더 다가서려는 미국항만당국자들의 배려는 친절을 넘어서 감동을 준다.
국내선사들은 미국시장을 우리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항만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현대상선·한진해운·조양상선 등 컨테이너 3사와 범양상선 등 대형 부정기선사들이 모두 미국에 취항을 하고 있다. 이에따라 롱비치, LA, 뉴욕항 뿐만아니라 시애틀, 타코마 등 미국의 주요 항만에는 태극기를 날리면서 늠늠하게 입항해 화물을 싣고 내리는 국적선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또 롱비치항에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자가 터미널을 개설·운용하고 있는 등 뉴욕, 시애틀 등 미국내 주요 항만에 국적선사들이 터미널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미주본부를 서부에 있는 LA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와 아시아로 수출입되는 미주화물의 대부분이 미국서안의 롱비치나 LA를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미주본부는 이 곳에서 미주지역을 총괄하는 헤드역할을 하고 있다. 롱비치항의 자가 터미널과 미주 전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네크워크를 운용하고 있으며 서울과 매주 2~3회 동시 화상회의를 통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한다.
한진해운은 현대와는 달리 미주본부를 동부의 뉴욕에 설치해 놓고 있다. 유럽과 중남미를 연계하기 위해서는 서부보다 동부가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진해운은 서부의 롱비치와 동부의 뉴욕항, 서북부의 시애틀항 등 미국내 주요항만에 전용터미널을 갖추고 있으며 보스톤 등 주요지점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항만을 우리의 터전으로 가꾸고 있다.【뉴욕·LA·롱비치(미국)=채수종 기자】
미국 최대항만인 롱비치항에서 (위에서 부터)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조양상선 소속 선박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와 한진은 이 항만에 자가터미널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