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중국 정부는 자동차교통사고책임강제보험 시장을 개방했다. 지금까지 중국 보험 당국은 외자계 손해보험사의 경우 책임보험은 판매할 수 없도록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미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문제를 시진핑 부주석과 논의한 뒤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당시 금융감독 당국은 해당 조치가 미국사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우리나라 보험사도 혜택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채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금융 분야에 대한 작업반을 별도로 만든다는 것은 작지만 큰 의미가 있다. 국내 금융시장은 포화 상태여서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중국 금융 당국은 외국계 금융사에 보이지 않는 규제를 대거 적용하고 있다. FTA 협상에 따라서는 금융 당국 간 채널을 만들고 나아가 중국 정부의 규제를 하나둘씩 풀 수 있다.
◇중국어로 시험 봐야…감독 당국 규제 다른 곳도=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법인장이나 점포장은 현지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자격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문제는 시험을 본인이 중국어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어를 모르면 중국에서 근무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전형적인 보이지 않는 규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형식적으로는 중국어나 영어로 볼 수 있게 돼 있지만 모두 중국어로만 시험을 치른다"며 "이 때문에 사전에 중국어 인재풀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사람만 보내게 된다"고 했다.
국내에서의 실적이나 영업전략에 따른 인사가 불가능한 셈이다.
금융감독 당국의 손이 미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중국과의 FTA 논의 때마다 나오는 지방정부 문제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감독 당국이 허용한 것이라고 해도 성 정부에서 해주지 않거나 처리가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며 "규제가 불투명하고 지역별로 상황이 다른 곳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중국 금융 당국은 외국계 은행에도 예대율을 75%로 맞추라고 강력히 지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은행은 위원화 예금을 유치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금융만 놓고 보면 중국이 눈에 띄는 장벽을 상당 부분 없앴지만 현지 영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국계 금융회사에 중국계 대형 금융사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며 "향후 중국과의 협상시 이 같은 부분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규제 최대한 없앤다=중국 인구는 14억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국의 4ㆍ4분기 경제성장률을 8%로 잡았다. 그만큼 중국 시장은 금융에서도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삼성화재 등 국내 보험사가 군침을 흘리고 있는 중국 자동차보험 시장이 오는 2020년 약 1조위안(약 180조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한 단계 올려놓기 위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 진출확대가 필수적이다. 금융위가 10월 중 발표할 금융산업 비전에도 우리나라 금융사의 해외 진출 지원 방안이 담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중국 정부의 추가적인 시장개방보다는 규제완화나 불투명한 관행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한미 FTA 등에서는 금융도 상대국에 내국민과 최혜국 대우 등을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추가적으로 우리나라 금융사에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이보다는 국내 금융사가 어려워하는 규제를 최대한 없애도록 하고 감독 당국 간 채널을 만들어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바로 중국 감독 당국의 의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다만 중국이 우리나라의 뜻대로 움직여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여전하다. 중국의 협상력이 높고 금융시장을 지키려고 하는 생각이 워낙 강한 탓이다. 한중 FTA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앞서 협상 과정에서도 중국 정부는 낮은 수준의 FTA 카드를 꺼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며 "금융분과를 별도의 작업반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지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별소득이 없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범정부 차원에서 금융 분야 협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다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번 기회에 지분제한 같은 부분에서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