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회생의 밧줄을 부여잡게 됐다. 일부 은행의 대출채권 포기라는 배수진 속에서 나온 구제금융으로 하이닉스는 당분간 반도체 경쟁업체들과의 숨막히는 '버티기 싸움'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다.
주식예탁증서(GDR:Global Depositary Receipt) 발행 4개월여만에 대규모 구제금융이 이뤄진데서 볼 수 있듯, 반도체 가격 하락세는 그칠줄 모르고 현금부족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시장이 회복되고 치열한 자구 의지가 병행돼야만 하이닉스의 영구 생존이 보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원 배경=채권단은 지난 6월말 하이닉스의 12억5,000만달러 DR발행을 위해 1조원 규모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등의 대규모 구제금융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반년도 안돼 무의미해졌다. 64메가D램 기준으로 개당 1.5달러로 추정해 산출했던 당시 생존계획은 완벽하게 어긋났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1달러 아래 판매 가격으로 현금은 고갈됐다. 연말 예정했던 5,000억원 추가 유상증자도 시장 회복 지연으로 내년 상반기로 연기됐고, 신규 지원 없이는 연말까지도 버틸 수 없다는 전망이 나왔다.
금융권은 신규 지원으로도 하이닉스가 생존할 지 확신을 못했고, 급기야 일부 은행의 대출 포기와 출자전환이란 극단적 수단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하이닉스 지원도 소수 정예로 재편=하이닉스에 대한 이번 2차 대규모 구제금융 조치는 금융권의 지원이 외환ㆍ한빛ㆍ조흥ㆍ산업 등 4개 은행 주도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국민ㆍ주택ㆍ신한 등이 대출채권 포기와 출자전환이란 카드로 사실상 하이닉스 지원틀에서 빠져, 하이닉스 살리기는 전적으로 외환 등 4개 은행 주도로 이뤄지게 됐다.
2차 구제금융 조치의 뼈대는 신규지원과 출자전환. 채권단은 출자전환 규모를 4조원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었으나, 8개 은행이 신규지원에 불참함에 따라 3조~3조1,000억원 수준에서 유지됐다. 신규지원 불참은행들의 대출 탕감비율은 청산가치에 3%를 차감한 비율로 결정됐다. 이달말 아서앤더슨의 실사결과를 토대로 최종 결정되는데, 현재로선 ▦담보채권은 60~70% ▦무담보채권은 80~90%가 유력하다.
이와 함께 출자전환후 남은 여신 금리도 6.5%로 낮춰 3년간 만기 연장한다. 이 같은 지원으로 연 4,100억원의 금융비용을 줄이고, 부채비율도 245.8%에서 100~105%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지원조치에 반대하는 금융기관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2005년말까지 매수청구권을 행사, 5년 만기 회사채(무이자)를 지급받는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가, 확실한 회생조치인가=하이닉스의 '확실한 생존'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외환은행은 이날 반도체 가격을 ▦내년 1달러 ▦2003년 1.5달러 ▦2004년 1.7달러 ▦2005년 1.2달러로 각각 전망했다.
▦올 하반기 2조2,900억원 ▦내년 상반기 3조2,220억 ▦하반기 5조7,100억원의 자금이 부족하던게 이번 채무재조정으로 ▦올 4분기 7,800억원 ▦내년 상반기 2,240억의 자금이 남고 내년 하반기에만 2,210억원의 과부족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현금흐름도 올 4분기 1조1,150억원 ▦내년 상반기 2조1,740억원 ▦하반기 1조2,290억원 ▦2003년 2조2,740억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마이크론이나 인피니온에 비해 기술력은 뒤지더라도 원가경쟁력은 우위에 있어 경쟁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은 전적으로 하이닉스가 내년 상반기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포함, 자구계획(2조6,000억원 수준)을 100% 달성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하다.
무엇보다 시장 전문조사기관 전망대로 반도체 가격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부터는 반등 해야 한다. 현재처럼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는 현금고갈이 계속 이어지고, 채권단의 인내심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김영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