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졸업식을 치른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교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꽃다발을 파는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인근 상인들이 장사진을 친 가운데 두 사람이 매대를 차려놓고 조화와 초콜릿으로 장식한 이른바 '초콜릿 꽃다발'을 대거 진열해두고 팔고 있었다.
이들은 대형 유통체인 GS리테일 직원과 인근 가맹점주였다.
최근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영세상인들이 반짝 특수를 누렸던 졸업식 꽃다발 시장에 대기업 계열 유통체인이 가세하면서 꽃가게 주인을 비롯한 영세상인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윤을 노린 대기업의 상술이 골목상권도 모자라 졸업식장까지 침투하자 과도한 영업행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GS리테일은 조화에 해외 유명 브랜드 초콜릿을 넣어 장식한 꽃다발을 1만원대에 내세웠다. 평균 2만~3만원에 판매되는 생화 꽃다발과 비교해 가격도 저렴한데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둔 터라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인기였다. 반면 졸업 특수를 기대하고 이른 아침부터 꽃다발을 만들었던 인근 꽃가게 상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대기업의 상술에 속만 타 들어가는 양상이었다. 한 상인은 "영세상인들이 반짝 영업하던 졸업식장에서 대기업이 이렇게까지 영업하는 것은 명백한 골목상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GS리테일은 본사 직원 수백명을 강제동원해 졸업식 영업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히 가맹점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판매 확대를 독려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GS리테일 관계자는 "회사에서 졸업 시즌을 맞아 직원 700명 이상에게 졸업식장을 찾아가 영업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초콜릿 꽃다발 가격도 GS리테일 가맹점보다 낮아 덤핑판매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기자가 1만2,000원에 구입한 꽃다발은 인근 가맹점에서 1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초콜릿 꽃다발을 구입한 학부모는 "대기업이 1년에 한두 번 있는 졸업·입학 시즌에도 나온다니 아무래도 영세상인들이 힘들 것 같다"며 "살 때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찜찜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화 꽃다발은 졸업식 교문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졸업식장에서 7년째 생화를 팔고 있다는 한 상인은 "대기업에서 나온 직원과 경쟁한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며 "경기가 어려우니까 그렇겠지라며 이해하려고 해도 매출이 예전의 3분의1에도 못 미칠 정도로 타격이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졸업 시즌에는 생화의 도매가격이 2~3배로 뛰는데다 소비자의 기호도 바뀌어 꽃다발 특수는 이제 옛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날 GS리테일은 직원 동원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가맹점에서 일하는 본사 직원들에게 "아르바이트생으로 위장하고 절대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본지의 취재가 이어지자 GS리테일 본사 관계자는 "졸업식장에서 초콜릿 꽃다발을 파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가 직원을 강제로 동원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영업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