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해외매각이 선호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해외매각은 성사만 된다면 일거다득의 효과가 있다.
한국이 외국투자가에게 매력적인 투자처임을 증명하는 것은 그중 가장 큰 효과다. 외국기업은 제조기술이나 경영기술이 우리나라 기업들보다 한수 위이기 때문에 그 같은 기술을 전수받을 기회도 된다. 국내의 경쟁기업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른바 대외신인도 제고, 기술이전, 경쟁유발 등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같은 값이라면 물론이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해외매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무엇보다 가격에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투자위험을 최소화하고 투자수익을 최대화하려는 것은 투자의 기본이다. 그런 거래에 이골이 난 선진국 투자자가 한국의 부실기업을 인수함에 있어서야 오죽하랴.
파는 측으로는 해외투자가에게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도 필요한 정책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보장해줘 '국제적인 봉' 소리를 들을 정도지만 한국에 투자하면 손해만 본다는 소문이 나면 해외투자 유치는 어렵게 된다.
그러나 해외매각에서 가격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매각 이후의 책임문제다.
매각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무시 못할 변수다.
해외매각이 성사되면 명백한 위법의 혐의가 없는 한 외국의 투자가가 주인인 기업에 대해 당국도 간섭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내매각의 경우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헐값ㆍ특혜 의혹이 제기되면 당국이 개입해야 하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려고 할 것이다. 제 값도 받고 나중에 책임질 일도 없는 거래가 매매쌍방에 가장 소망스럽지만 가격과 책임간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가격보다는 책임을 택하기가 쉽다.
조금 더 받지만 뒷날 문제의 소지가 있는 거래보다는 덜 받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없는 거래를 택한다는 얘기다. 해외투자가는 협상에서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해 값을 깎으려고 하게 된다.
반면 국내매각의 경우 기대효과나 면책 프리미엄에서 열위(劣位)에 놓이게 마련이다. 이를 만회하는 방법은 고가매입뿐이다. 그 점에서는 원매자나 매각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나 입장이 비슷하다.
대한생명 매각협상은 가격과 책임의 함수관계로 살펴볼 만한 사례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대한생명을 외국의 평가기관이 평가한 액수를 거의 다 주고 사겠다고 한 한화컨소시엄에 대해 가격산정 기준을 두차례나 바꾸면서 값을 올리려 하고 있다.
인수경쟁에 참여했던 미국의 메트라이프가 돈을 얹어줘야 사겠다고 한 것에 비하면 얼른 팔았어야 마땅한데 계속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비싼 가격 속에는 공자위의 면책 프리미엄도 포함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종전의 협상구도를 역전시키는 듯한 현상이 서울은행 매각협상에서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은행의 매각과 관련, 미국의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와 사모펀드인 론스타 그리고 국내의 하나은행이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중 해외투자가들이 하나은행과의 경쟁에서 역차별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두 미국자본은 값도 비싸게 부르고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처럼 무리한 풋백옵션을 요구하지 않는데도 한국 정부가 헐값 해외매각 시비를 의식해 하나은행에 넘길 것이라는 얘기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측의 협상력이 좋아졌다면 일차적으로는 한국경제의 견실한 성장세, 그리고 금융권의 현저한 수익향상 외에 하나은행이라는 강력한 국내적 대안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양해각서 직전에 협상이 무산된 하이닉스반도체 매각건도 최근 마이크론측이 재협상 의사를 표명해 관심을 끌고 있다. 독자생존이든, 제2의 경쟁자든 강력한 국내외적 대안이 있어야 하이닉스 매각도 진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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