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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800만 신들의 고향이라는 시마네현 이즈모(出雲)를 찾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30분 만에 돗토리현 요나고공항에 내렸다. 자동차를 빌려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이즈모대사(出雲大社)까지는 1시간 안에 도착했다. 이즈모는 한적한 시골이다. 하지만 이즈모대사가 있어 매년 수백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이즈모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평야를 가로질러 가면 산등성이가 시작되는 부근에서 신사가 나온다. 바로 이즈모대사다. 일본에 있는 10만여개 신사 중 규모 면에서 최대이고 창건역사도 가장 오래됐다. 이즈모대사를 찾는 사람들은 우선 그 규모에 놀라고는 한다. 이곳에는 일본 신사 가운데 제일이라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즈모대사는 이름부터 신사 가운데 상위급이라고 해서 '대'자가 붙어 있다. 상점가를 가로질러 신사 쪽으로 가면 우선 오토리이(大鳥居)를 만난다. 이곳에도 '오(大)'자가 붙어 있다. 도리이는 일본 신사 입구 부근에 세우는 구조물인데 오토리이의 경우 높이 23m, 기둥 지름 2m, 기둥 둘레 6m로 일본 최대의 크기다. 신사의 경내로 들어가면 높이 24m로 같은 양식으로 지은 신사 가운데 최대 규모인 본전(本殿) 건물이 있다. 본전은 지난 2008년 4월부터 5년여간의 대대적인 수리를 마치고 올해 5월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공개했다.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이즈모대사의 부속건물인 가구라텐(神樂殿) 앞에 걸려 있는 시메나와(짚으로 꼬아 만든 금줄 장식)는 길이 13m, 무게 3,000㎏으로 역시 일본 최대의 크기를 자랑한다. 또 본전 앞에 참배객이 참배하는 장소인 배전(拜殿)의 시메나와는 길이 8m로 두 번째로 크다. 신사 앞에 있는 국기와 게양탑도 역시 최대라고 한다.
이즈모대사가 유명해진 것은 이곳에 일본 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매년 10월이면 일본에 있는 800만 신들이 이즈모대사에 모여 회의를 연다고 한다. 일본은 옛날부터 음력 10월을 신들이 외출 중인 달이라 해 간나즈키(神無月)라고 부른다. 신들이 이즈모로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즈모 지방에서만 10월을 가미아리즈키(神在月), 즉 신들이 있는 달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니 재미있다.
그럼 왜 이런 궁벽한 곳에 일본 신들이 모일까. 이는 이즈모의 신화와 관계가 있고 나아가 일본사의 시작과도 연결된다. 보통 일본의 시조(신)는 아마테라스노오미카미(天照大神)라고 하는데 그의 '동생'으로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라는 신이 있었다. 스사노오도 하늘나라에서 살았는데 나쁜 짓을 하다가 추방돼 지금의 이즈모로 내려왔다. 그런데 시련을 겪고 성격이 변했는지 이즈모에서는 주민들을 괴롭히는 머리가 여덟 달린 구렁이를 죽임으로써 영웅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후 지역호족의 딸과 결혼해, 결국 이즈모왕국을 세웠다. 스사노오의 아들이 오쿠니누시노카미(大國主命)인데 그는 이즈모국을 발판으로 세력을 확대해나가다가 아마테라스신의 손자인 호노니니기(天孫)가 세운 야마토(大和)국과 충돌했다. 물론 실제 전쟁에서 패했겠지만 신화에서는 오쿠니누시가 이즈모를 호노니니기에게 평화적으로 양도한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조건을 달았다. 지배지역을 모두 넘겨주는 대신 오쿠니누시 자신은 일종의 중립 평화지역으로 이즈모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모든 신사는 일본 국왕의 조상이라는 아마테라스와 그의 후손들을 제신(祭神)으로 모신다. 하지만 이즈모대사의 제신은 오쿠니누시다. 이에 따라 이즈모대사는 일본 내 정치와 관련을 갖지 않음으로써 신들의 고향이 됐고 다른 지역 신들도 비무장 평화지역인 이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이즈모대사의 본전은 지난 1744년에 지어진 것이다. 이즈모에 대규모 정치세력이 있었던 것은 유적으로도 증명되는데 1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즈모대사의 옛 본전 기둥이 2000년에 발견됐다. 이 유적은 직경 1.3m의 기둥 세 개를 묶어 지름 3m가 넘는 하나의 기둥을 만들었다. 이로써 추정해본다면 당시 이즈모대사의 높이는 48m로 지금 건물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이즈모대사에서 서쪽으로 가면 1~2분이 채 되지 않아 바다가 나온다. 동해다. 바다와 산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히노미사키(日御岐)라는 곳이 있다. '태양의 언덕'이다. 이곳은 동해 바다를 기준으로 일본 쪽에서 툭 튀어나온 곳이다. 이 때문에 옛날부터 선박의 주요 항로상에 위치했는데 지금도 동양에서 가장 높다는 높이 44m의 등대가 있다. 이 히노미사키 등대는 1903년에 세워졌다.
등대로 가는 길의 중간에 조그만 섬이 보인다. '후미시마(經島)'라고 부르는 면적 3,000㎡의 아주 작은 돌섬이다.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괭이갈매기의 번식지이자 인근 히노미사키신사의 신역(神域)으로 지정,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돼 있다. 섬 정상에는 작은 도리이와 신사가 세워져 있다. 히노미사키신사의 신관들이 1년에 단 한번 8월7일에 들어가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전설에는 하늘에서 쫓겨나 이즈모로 추방돼온 스사노오가 죽은 후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즈모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면 한반도의 신라가 나온다. 세력다툼에서 패했던지, 아니면 더 나은 생활을 꿈꾸었던지 스사노오로 대표되는 일단의 세력이 신라를 떠나 동쪽으로 와서 이즈모에 정착했을 것이다. 농경과 철기를 바탕으로 인근 지역을 규합해 국가를 세웠을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한 스사노오가 죽으면서 신라에 가장 가까운 곳을 자기의 영원한 무덤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라계의 일본 지배는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곧이어 백제인과 가야인들이 대마도를 경유한 최단거리를 통해 일본, 즉 지금의 규슈 지방으로 대규모로 넘어온다. 아마테라스는 백제계 이주민의 대표로 볼 수 있다. 신라계와 백제계의 세력다툼에서 결국 백제계가 승리하고 이후 일본 왕가의 계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신라계의 조상인 스사노오는 신들의 세계에서만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