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포스트 QE 시대] 펀더멘털 약해진 기업… 한 곳 쓰러지면 금융권 손실 6조 넘어

■한은 금융안정보고서

10대그룹 위험 노출액 44조 8,000억원 달해

기업 양극화도 날로 심화… 30곳이 영업익 절반 차지

저금리로 연명 기업 늘어 충격땐 건전성 급속 악화

허재성(가운데)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한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대한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중국 기업의 공세와 엔저, 글로벌 경기침체의 장기화, 성과 없는 규제개혁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분투했던 국내 기업들이 한계에 부닥친 것일까.

매출액은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줄었고 영업익도 급격하게 둔화되고 있다. 특정 기업과 업종에 대한 쏠림은 더욱 심화돼 '외풍'에 버틸 체력은 더욱 약해졌다. 부실 위험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위험부채 비중이 높은 상위 10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스트레스트 테스트를 해본 결과 금융권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44조원8,000억원에 달했다.

더욱이 장기불황으로 대기업도 안전하지 못했다. 특히 조선·건설·해운 등 한계기업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소속 대기업집단의 부실로 확산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게 한은의 결론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업 양극화…상위 30개사, 영업이익 절반 차지=1만5,914개의 국내 기업 가운데 상위 30개사가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은 51.7%에 달했다. 2009년의 40.6%보다 11.1%포인트나 높아졌다. 수출이 호조를 보인 전기전자(13.8%→28.2%), 자동차업종(6.2%→11.5%)의 영업이익 점유율이 크게 증가하고 조선·철강·화학·부동산업종 비중은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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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쏠림 심화는 고용과 설비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허재성 한은 부총재보는 "기업들의 실적 격차가 커질 경우 고용·설비투자가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영업실적 상위 기업 대부분이 전기전자·운송장비 등 자본집약적 산업이라 실적 증가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가 낮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들의 실적 양극화로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이 낮아지고 대내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 재무건전성이 나빠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은은 "실적 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단기금융자산 보유가 증가하면서 금융기관 수신이 단기화됐다"고 설명했다.

◇기업집단 부실 위험 2008년 수준…한곳 부실 땐 손실 6조원 넘어=부실 위험도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커졌다. 자산 5조원 이상인 63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위험부채는 6월 기준 19.1%로 2008년의 19.2%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은이 8월 기준 위험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 결과 한곳이 부실화된다면 금융권 손실은 최소 6,000억원에서 최대 6조4,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위험기업집단은 63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위험부채 비중이 높은 10곳이다. 이들의 금융권 익스포저(대출금·사모사채·확정지급보증 등 여신성 채권)는 8월 기준 44조8,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은행의 익스포저는 34조7,000억원, 비은행 금융회사의 익스포저는 10조1,000억원이었다. 한은은 10개의 위험기업집단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한은은 "수익창출능력이 제약되고 있음에도 저금리 등에 힘입어 생존하고 있는 기업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며 "미국의 금리 정상화 등으로 대내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기업 재무건전성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의 체력이 떨어지다 보니 영업환경이 악화될 때 위험기업의 비중도 크게 치솟았다. 수익성이 30% 하락하고 금리가 2%포인트(200bp) 상승할 때 2013년 위험기업(이자보상비율과 유동성비율이 동시에 100% 미만인 기업)은 30.2%로 13.7%포인트 상승했다. 10곳 중 3개 기업이 위험해진다는 얘기다. 수익성 15% 하락과 금리 1%포인트(100bp) 상승의 경우에는 위험기업은 22.8%로 6.3%포인트 증가하지만 2009년에는 4.8%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한은은 "수익창출능력이 제약되고 있음에도 저금리 등에 힘입어 생존하고 있는 기업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며 "미국의 금리 정상화 등으로 대내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기업 재무건전성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세계경제둔화, 중국 등 경쟁자 등장, 엔화 약세 등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적정한 환율관리,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제품, 남보다 앞선 제품 등의 생산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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