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8월 24일] 장관 못내는 '불임부' 농식품부

땅은 예로부터 생산의 상징이다. 우리의 건국신화에서 하늘과 땅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법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땅의 여성 상징은 일차적으로 땅이 지닌 생산성을 의미한다.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이다. 정부 부처 중에서 땅과 가장 가까운 부처는 농림수산식품부다. 농업과 임업ㆍ식품을 담당하고 있어서다.

농림장관 10명중 1명 내부출신


하지만 안타깝게도 농식품부는 불임(不姙)부처다. 장관을 내부에서 제대로 배출해내지 못한다는 의미에서의 불임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까지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모두 9명이다. 이 중 가장 많은 3명(한갑수ㆍ임상규ㆍ장태평)이 기획재정부(경제기획원ㆍ재정경제원ㆍ기획예산처 등) 출신이다. 교수 출신(김성훈ㆍ허상만)이 2명, 정치인 출신(김영진ㆍ박홍수)이 2명, 농업경영인 출신(정운천)이 1명이다. 정통 농식품부 관료 출신은 김동태 장관 1명에 불과하다. 이번에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유정복 의원도 정통 농림관료 출신은 아니다. 내무관료 출신의 정치인이다.

지난 13일 단행된 차관급 인사에서 농식품부 1ㆍ2차관이 모두 바뀌면서 두 차관 모두 내부 출신으로 채워졌지만 그 전까지 1ㆍ2차관 모두 외부 출신이었다. 지난해 초 임명된 민승규 전 1차관은 삼성경제연구소 소속의 농업전문가, 하영제 전 2차관은 내무관료 출신이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8ㆍ13 차관급 인사의 원칙에 대해 "대내외 소통을 강화하고 각종 정책의 균형되고 안정감 있는 추진이 가능하도록 장관이 외부에서 오면 차관은 내부 승진, 장관이 내부 발탁되면 차관은 외부 전문가를 기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식품부에 국한해보면 장태평 장관, 민승규ㆍ하영제 차관 때는 이 같은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농식품부 출신 관료가 반드시 농식품부 장관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외부 출신 인사가 농정을 더 넓게, 깊이 잘 볼 수 있고 일도 더욱 잘 할 수도 있다. 힘 있는 정치인 출신이나 재정부 출신 관료가 오면 그 세력을 바탕으로 농정 관련 예산도 더욱 많이 따올 수 있고 대외사업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번 유정복 장관 후보자까지 포함해 지금까지의 농림장관 10명 중 1명만이 내부 출신이라는 점은 정통 농림관료에 대한 홀대가 해도 너무하다는 느낌이다.


그 바탕에는 산업화ㆍ정보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상대적으로 농업의 역할이 급속히 줄고 농식품부의 무게감 역시 추락했다는 점이 깔려 있다. 속된 말로 농림장관으로 누구를 지명해도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정권 핵심담당자들의 인식인 셈이다.

관련기사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 정부로 이어져온 TK(대구ㆍ경북)ㆍPK(부산ㆍ경남)정권에서 농림장관은 호남 몫의 구색 맞추기용 장관자리였다. 지역 안배 차원에서 장관 자리를 하나 호남에 주기는 해야겠는데 다른 실세 장관을 주기는 그렇고 하니 농림장관은 단골로 호남인사 몫이었다.

이러다 보니 농림장관은 전문성보다는 전체적인 내각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자리가 됐고 이는 자연스레 내부인물보다 외부인사 중에서 장관후보를 찾게 만드는 '전통아닌 전통'을 만들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전 정부보다 한발 나아갔지만 내부보다 외부에서 농림장관을 찾는 관성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 8ㆍ8 개각과정에서 역시 농식품부 장관 자리는 그 자체의 전문성을 찾는다기보다는 여권 내 계파 간 배려 등 전체적인 조각의 모양새를 만드는 데 치중해 후보자가 선임됐다.

정치안배 떠나 전문성에 역점을

그러나 농업은 이렇게 홀대 받을 분야가 아니다. 식량안보ㆍ녹색시대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산업과 관광ㆍ고용 측면에서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분야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누가 이 같은 가능성과 비전을 보고 뚝심 있게 추진할까의 문제다.

그러나 조직의 수장도 제대로 내부에서 배출해내지 못하는 조직이 무슨 추동력과 희망을 가지고 이 같은 비전을 진행해나갈 수 있을까. 청운의 뜻을 품고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 농식품부에 들어온 젊은이들에게 농식품부의 이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