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국무조정실장이 의원 입법에 대해 사후규제 영향분석을 평가하고 심각하면 법 개정까지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의원발의 법률안 때문에 규제가 양산된다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
의원이 법안을 내면 본회의 보고 후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되는데 동시에 정부 관련부처에도 보내진다. 이후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작성과정에 정부는 법안에 대한 입장과 의견을 반영시킨다. 항간에 부처 사무관들이 검토보고서를 직접 써준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또 상임위 전체회의에 소관부처의 장이 출석해서 정부 입장을 밝힌다. 법안소위 심사 때는 차관은 물론 담당 실국장과 과장까지 배석해서 발언한다. 정부가 '수용 곤란'이나 '부동의'인 법안은 통과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 정부가 법안심사과정을 모를 리 없는데 청와대에 떠밀려 황당한 소리를 내는 모습이 못내 측은하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대부분의 규제는 각종 서류제출 의무 등 복잡한 행정절차에 있다. 행정규제를 힘의 원천쯤으로 생각하는 일부 관료 때문이다. 정작 '손톱 밑 가시'를 꽉 쥐고 규제개혁의 발목을 잡는 건 정부인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난달 25일에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박근혜 정부 1년 성적표가 나올 시점에 맞춘 듯 허겁지겁했다. 공약파기 논란 속에 재탕 정책을 누비고 기워 '짜깁기 희망'을 던져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어김없이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4일에는 한 번 더, 민생경제 관련 정부법안이 처리되지 않는 정치현실이 안타깝다며 새 정치에 빗대어 야당 탓을 했다. 과연 그럴까.
협조할 것은 협조하겠다는 생각에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후속 입법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단다. 1월 말 법제처가 고시한 정부입법계획 324개 목록을 봐도 잘 안 보인다. '정기국회 닥쳐서 법안을 몰아서 내고 연내처리 안 해준다고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 나와 주먹을 흔들며 야당을 겁박하는' 과거의 비정상적 관행이 반복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3개년 중 1년이 지나간다.
3월 들어 국회 창조경제특위가 한창이다. 1년 넘게 갈팡질팡해온 창조경제를 더 이상 못 봐주겠는지 여당 의원들 열정이 대단하다. 핀란드 의회의 미래위원회처럼 마치 국회가 컨트롤타워라도 된다는 듯 장관 8명을 출석시켜 다그치고 있다. 그러나 부처 장들의 보고내용을 들으면 입법추진 의지가 보이질 않는다. 창조경제 법안이 말 많은 외국인투자촉진법과 관광진흥법 정도인 줄 아는 국민이 많다.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은 존중돼야 한다. 정부안이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와 동의기반이 형성돼야지 밀어붙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세법의 한 개 조항, 부칙과 별표 하나에도 수많은 국민과 기업의 밥그릇,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걸렸다.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 국회의원이고 국회는 사회갈등의 용광로여야 한다. 제1야당은 정부여당과 대안을 놓고 경쟁하고 협력하는 파트너다.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기 위한 청와대와 정부의 성의 있는 모습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