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믿음과 벗

송관호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산을 옮기는 사람은 작은 돌맹이부터 옮긴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작은 돌맹이를 옮기는 일이 하찮은 것 같지만 결국 산을 옮기게 된다는 말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정신적 만족보다는 경제적 풍요가 중요한 가치척도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적지않은 의미를 전달해주는 말이다. 이 속담처럼 누구에게나 옮기고 싶은 산이 있을 것이다. 작게는 몇 주나 몇 달 만에 이룰 수 있는 목표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년 혹은 인생을 두고 노력해야 할 산이 많이 있다. 어릴 때는 어떤 산이든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청년시절이 되면서 다른 이들이 옮긴 산이 대단해 보이고 자신의 현실에 좌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산을 옮기기 위해서는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믿음(信)과 함께 옮겨줄 벗(友)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또 자신의 인생이 끝나기 전에 산을 옮기는 일을 마칠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산을 옮기고 있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옮길 수 있는 산, 또 옮겨야 할 산들이 아주 많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공(時空)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사유(思惟)할 수 있게 된 이후 우리는 지구촌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됐으며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옮길 ‘다양한 산’들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산을 옮기는 일은 인내할 때 가능하며 인내는 동지애(同志愛)와 소신을 통해 지속될 수 있다. 또 벗과 동료가 있을 때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산을 감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혼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겠지만 5명이 모이면 농구팀을 이룰 수 있고 11명이 모이면 축구가 가능하다. 팀워크를 통해 옮기게 되는 산의 의미는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산의 규모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또 희망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집트의 고대 파피루스 내용 중에 “요즘 젊은 애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 정말 걱정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고대 중국에서든 유럽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인류가 풀지 못할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나도 후세를 걱정하는 기성세대가 돼보니 지키고 가꿔나가야 할 가치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믿음과 벗은 우리인생의 돛과 삿대이다. 세상의 가치가 변해도 이러한 가치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