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전성수 도루코 대표

"세계 첫 6중날 면도기 개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죠" <BR>국내 면도기시장 점유율 41%로 유명 브랜드 질레트·쉬크와 맞서 美·유럽등 선진국서도 주문 쇄도 <BR>年 매출 2000억 눈앞 승승장구 "2020년엔 세계 점유율 10% 달성"



면도기시장은 다국적기업들의 격전장이다. 생활용품 업체 피앤지(P&G)의 '질레트(Gilette)', 건전지로 유명한 다국적기업 에너자이저의 '쉬크(Schick)' 등 유명 브랜드들이 세계시장을 70% 이상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토종기업들이 대규모 물량공세를 벌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국내에는 고집스레 기술력으로 승부하며 질레트ㆍ쉬크와 당당히 3파전을 벌이는 기업이 있다. 올해로 창립 56주년째를 맞은 장수기업 도루코(DORCO)다. 전성수(52ㆍ사진) 도루코 대표는 "국내 소매시장에서 도루코는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며 질레트(60%)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며 "특히 숙박시설ㆍ목욕탕용 일회용 제품까지 포함하면 전체 면도기시장의 41%를 점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페이스(Pace)' 시리즈를 당당히 프리미엄급 브랜드에 올려놓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도루코의 기업사(史)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난 1983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전문경영인 자리까지 오른 사내 첫 인물인 전 대표는 도루코가 맞았던 두 차례의 위기를 온 몸으로 겪었다. 도루코의 첫 번째 위기는 1989년에 찾아왔다. 정부가 국내기업 보호를 위해 유지해왔던 면도기시장 수입제한을 풀며 질레트ㆍ쉬크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온 것.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시장에 경쟁자가 없이 승승장구했던 도루코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선보이는 2중날 면도기에 치여 면도기 부문 매출이 전년보다 80% 가까이 추락했다. 도루코는 주방용 식칼, 문구용 칼, 숙박업소ㆍ목욕탕 등에서 판매되는 일회용 면도기로 회사를 유지하며 숨고르기를 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위기는 더욱 혹독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자 회사 외형이 3분의1까지 줄어들었다. 당시 수술용 칼, 산업용 절삭공구 등 의욕적으로 추진한 신규 사업마저 실패로 돌아가며 직원들의 정리해고도 불가피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회사였기에 남은 사람, 떠나는 사람 모두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 질레트가 세계 최초로 3중날 면도기를 선보이며 면도기시장이 기술경쟁 양상으로 돌입했다. 4중날ㆍ5중날로 빠르게 진화하는 '턱밑 전쟁'에서 만년 3위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혁신적인 기술진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도루코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도루코는 우선 2001년 생산법인(도루코)와 판매법인(도루코산업)으로 나뉘어 있던 회사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한 3중날 면도기 다중날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바로 6중날 면도기 개발에 착수했다. 4중날ㆍ5오중날 등 글로벌 회사들이 이미 내놓은 제품을 선보이다가는 영원히 발끝만 쫓다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 회사의 명운을 건 연구개발 과정에서 연구원들은 물론 여직원들까지 테스트를 위해 면도기를 붙잡고 있다 보니 5년간 그야말로 회사에 '털'이 남아나지 않았다. "6중날 개발과정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지 모른다"고 운을 뗀 그는 "아침마다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로 출근해 얼굴의 절반은 경쟁사 제품, 절반은 우리 제품으로 면도를 하고 피부와 수염을 비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구개발비 150억원을 투자해 개발해낸 제품이 6중날 면도기다. 6중날 면도기는 면도기 기술개발 경쟁의 포문을 연 질레트조차 아직까지 개발하지 못한 제품으로 도루코가 2007년 세계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전세계에서 도루코만 생산할 수 있는 6중날 면도기의 비밀은 절곡날 굽힘 기술. 전 대표는 "다른 면도기 업체들처럼 날 두 개를 용접해 'ㅅ'자 모양의 면도날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1㎝에 불과한 카트리지 안에 5개 이상의 면도날을 넣을 수 없으며 6개를 넣는다 해도 거품ㆍ털 등 슬러지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아 제 기능을 못한다"며 "하지만 칼날 하나를 구부려서 만드는 방식으로는 얼마든지 추가로 날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 책임연구원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6중날 면도기 '페이스'은 단숨에 도루코를 프리미엄급 면도기 업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꿈에 그리던 국내시장 2위를 탈환하게 한 것은 물론 품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며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도루코는 제품이 출시된 2007년 단숨에 연간 매출액 1,000억원(연결재무제표 기준)을 뛰어넘었으며 올해 매출액 2,000억원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 대표 입사 당시 17명(도루코산업 기준)에 불과했던 직원 수도 어느새 340명으로 늘어났다. 전 대표는 "현재 미국ㆍ멕시코ㆍ영국 등에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세계 118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됐다"며 "지난해 페이스6보다 절삭력과 밀착력이 강화된 '페이스XL'을 내놓고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조만간 여성용 6중날 면도기 라인업을 추가로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면도기시장의 후발주자에서 기술선도 업체로 거듭난 도루코의 다음 목표는 '글로벌 도루코 1020'. 이 슬로건은 지난해 12월 전 대표가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오는 202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발표한 도루코의 비전이다. 세부 목표로는 신흥시장 면도용품 브랜드파워 2위, 글로벌 할인마트 자체브랜드(PL) 수주 1위, 국내 소매시장 점유율 50% 달성 등이 있다. 또 지난달에는 도루코의 이니셜 'D'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듯한 화살표를 결합한 새로운 기업이미지(CI)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 대표는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하지만 2020년까지 8,000억원을 차세대 면도기 개발, 브랜드마케팅 강화, 생산기지 확충에 투자해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며 "특히 아직 2중날 면도기들이 주로 판매되지만 소득수준이 올라가며 고급화가 가능한 브라질ㆍ인도ㆍ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에 제품을 알리고 시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He is…
▦1959년 인천 ▦1979년 광성고 졸업 ▦1983년 도루코 입사 ▦2005년 경원대 경영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수료 ▦2007년 도루코 이사 ▦2009년 도루코 상무이사 ▦2010년 도루코 대표이사
평사원서 시작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 전성수 대표는 전성수 도루코 대표는 56년 도루코 역사에서 평사원으로 입사해 처음으로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경영인은 몇 명 있었지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수순을 밟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지난 1983년 도루코산업 총무부 관리과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도루코산업은 2001년 계열사 통폐합 전 판매ㆍ유통을 전문으로 하던 법인이었다. 그 후 영업을 하고 싶다고 자청해 팀을 옮긴 그는 서울ㆍ경기, 대구ㆍ경북, 광구ㆍ전라 등 전국을 돌며 경험을 쌓았다. 2007년 임원 자리에 오른 그는 이사ㆍ상무를 거쳐 지난해 12월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특별히 최고경영자 재목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는 "주위에서 동고동락했던 분들과 함께 회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조직이 갖춰진 상황이라 이 자리에 오른 것 같다"고 답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번 선례를 통해) 직원들이 열심히 하면 제2, 제3의 대표이사가 탄생하는 전통이 이어질 것 같다"며 "그분들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주변에서는 그를 '덕장(德長)'이라고 칭한다. 오랜 회사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 대표는 다른 임직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남다른 강점이 있다"며 "이런 면 때문에 직원들도 대표이사를 믿고 따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톰슨칼 국산화 등 신성장동력 발굴 힘써

식도·가위 넘어 주방용품 전반으로 제품군 확대 나서 면도기 제조를 통해 쌓아온 독보적인 칼날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도루코가 신성장동력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85%에 이르는 면도기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칼날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다. 도루코는 최근 LCD필름, 휴대폰 부품, 박스, 스티커 등을 절삭하는 데 필요한 특수 칼날인 톰슨칼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톰슨칼은 그동안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 쓰던 부품으로 도루코는 칼날 제조에 대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도루코가 톰슨칼 사업에 거는 기대도 크다. 아이템을 다양화하기에 따라 시장규모가 3,000억원대 이상 될 수 있어 향후 주력사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현재 톰슨칼의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산 부품도 품질이 좋다는 인식을 갖도록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하반기에 매출액 30억원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전했다. 또한 도루코는 주방용 식도 시장에서도 프리미엄급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다. 주력상품인 주방용 식도 '레몬그레스'의 경우 독일 주방용품 브랜드 '헨켈' 제품보다 비싼 값에 팔릴 정도다. 그는 "평생 갈지 않고 쓸 수 있는 세라믹 칼, 주방용 가위 등 헨켈ㆍ커코ㆍ드라이작 등 명품 브랜드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또한 도루코가 가진 품질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식도ㆍ가위를 넘어 주방용품 전반으로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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