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총리의 보고 파장/김인영 뉴욕특파원(기자의 눈)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말 한마디가 민감한 대미통상문제를 벌집 쑤신 듯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한승수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지난 9일 청와대에 「경쟁력 10% 높이기 추진방안」을 보고하면서 포항제철의 핫코일 가격을 8% 인하하겠다고한 것. 이 내용이 월스트리트 저널지 등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상무부의 반덤핑판정에 대비하고 있는 한국측 협상팀은 때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부총리가 대통령 앞에서 한 보고를 뒤집을 만한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사실과 다르다고 미국측에 주장하더라도 불경죄에 해당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부총리의 보고 중에서 대미통상협상에 문제로 되는 대목은 정부가 철강재 가격을 통제하고 있음을 밝힌 점이다. 미 상무부의 반덤핑마진율 산정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의 차이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경우 미상무부가 임의로 정한 구성가격으로 마진율을 계산한다. 미상무부는 지난 4일 예비판정에서 한국산 철강재를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지 않는 범주로 분류, 냉연강판 0·19%, 아연도금강판 0·06%의 마진율을 내렸다. 한국 철강재가 덤핑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종판정을 앞두고 한 부총리의 보고는 미상무부에 오해의 소지를 던져주었다. 미상무부가 판단기준을 바꿀 경우 덤핑 마진율은 예비판정보다 훨씬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협상팀의 하소연이다. 물론 협상팀도 미국 정 에 답변할 방도는 있다. 핫코일 가격 8%인하는 포철이 지난 9월23일 스스로 단행한 것이며 부총리의 보고는 그 내용을 포함시킨 것일 뿐 뉘앙스가 다르다고 주장하면 된다. 그러나 미상무부가 누구의 말을 신뢰할지 분명하기 때문에 협상팀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한 부총리는 주미대사와 상공부장관을 역임했다. 때문에 대미통상현안이 무엇이며, 자제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는 경제각료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늘어가는 무역수지적자를 줄이고 경제를 살리자면서 내놓은 대책에서는 욕심을 너무 부린 것 같다. 민간부문에 맡겨진 자율가격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관료적 발상이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10% 떨어뜨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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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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