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삼성 사재출연 유보] 소걸음전략으로 협상력 높이기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을 삼성자동차의 채무확정 이후로 미루기로 한 것은 채권단의 전방위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채권단은 19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삼성그룹의 삼성자동차에 대한 「무한 책임론」을 재확인할 예정이었다.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가 부채 처리에 부족할 경우 삼성에 추가부담토록 각서를 요구하는 동시에 삼성차 부산공장의 선가동-후매각을 위해 삼성에 운영자금을 댈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채권단의 방안이었다. 그러나 삼성이 18일 돌연 『출연 방식을 회사정리 절차에 따른 채무확정 이후에나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이같은 계획이 차질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열리는 채권단 회의도 방향 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느긋한 삼성= 삼성은 법정관리 신청 이후 평온한 모습을 보여왔다. 400만주 가치에 대한 논란이나 정부 및 금융권의 추가출연 압박에도 일체 대응하지 않고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식의 「구경꾼」 자세였다. 그리고 삼성은 사재출연을 채무확정 이후로 유보함으로써 다시 느긋하게 세월을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법적 절차에 따라 온갖 채권자들로부터 삼성자동차에 대한 채권을 신고받아 이를 확정짓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법원이 법정관리 신청을 접수받으면 1개월 안에 회사정리 개시결정을 내리지만 채권신고를 받고 채권자집회를 거쳐 채무를 확정, 정리계획을 인가하기까지는 4~6개월이 필요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한보철강 부도 때 여러차례에 걸쳐 채권신고를 받고 채무금액을 조정하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며 『삼성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채권단 회의를 아무리 열어봐야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삼성이 사재출연 방식을 확정짓지 않는 이상, 채권단이 임의로 400만주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현재로선 이건희 회장의 주식을 단순히 「보관」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채권단이 이를 나눠 갖거나 소유권을 이전하게 되면 범범행위가 된다. ◇의도는 채권단 견제= 한빛은행의 실무자는 『삼성이 사재출연을 미루기로 한 것은 채권단의 공세를 차단해 시간을 벌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채권단이 운영위원회를 열고 삼성그룹에 채권 추가손실 보전 각서와 자동차 공장 운영자금까지 요구할 것을 간파하고 「예상치 못한 일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공격은 무엇보다 채권단의 환부인 서울보증보험에 집중된다. 이 회사의 경영이 급속히 악화되면 채권기관간에 균열이 발생, 삼성과 채권단의 새로운 협상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한빛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삼성차를 선 가동-후 매각 방식으로 처리키로 한 것은 공장을 장기간 놀려둘 경우 담보가치가 떨어져 매각 때 높은 가격을 받아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 은행들은 매각 전까지의 운영자금은 삼성에 부담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자동차의 전체 채무내용이 드러난 뒤에 천천히 협상을 진행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재출연을 늦춘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채권단의 동상이몽= 대표 채권기관(한빛은행)과 최대 채권기관(서울보증)의 입장차가 뚜렷한 가운데 당사자인 삼성이 사재출연 방식 결정을 늦추면서 삼성차 채권회수와 처리를 둘러싼 갈등구도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권단은 이미 「제몫 챙기기 다툼」에 돌입한 상태. 『400만주를 출연할테니 채권단이 알아서 나눠가져라』는 것은 언제나 동상이몽인 금융기관들의 이기심을 자극, 힘겨루기 양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빛은행은 전체 채권기관을 대상으로 채권비율에 따라 주식을 나누자는 입장인 반면 서울보증보험은 『은행은 담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공장을 팔아 꿔준 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는데, 주식까지 채권금액 비율로 나눈다면 오히려 이익을 보는 셈』이라며 『무담보 채권자에게 우선 배분하자』고 맞서고 있다. 삼성차에 2조원 이상의 지급보증을 선 서울보증보험은 삼성생명 주식 출연 방식 및 배분 결정이 늦어질수록 매달 돌아오는 원리금 상환요구에 시달려야 한다. 서울보증은 기아와 한라 등의 부실채권 때문에 존폐의 기로에서 헤매다가 최근 정부의 공적자금 1조2,500억원을 투입받아 기사회생한 기업이다. 따라서 삼성차 채권회수가 늦어질수록 경영에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된다. /한상복 기자 SBHA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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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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