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김원길 안토니 대표

"성공은 돈보다 행복이죠" 버는 '足足' 베푸는 나눔전도사



김원길 안토니 대표가 지난 15일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보성CC 클래식에서 시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아들 김우현에 안겨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KPGA

"최고의 구두장이가 되자" 결심 18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전국기능경기대회 동메달 따내


"행복한 사람이 좋은 구두 만든다" 직원 위해 스포츠카·보트 마련도

"봉사는 중독… 베푸는 삶 즐거워" 기부·효도잔치에 창업 멘토까지

사회공헌에 매년 수억씩 내놔


'힘들어도 괜찮아~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때로는 힘들어 쓰러지면은~오뚝이처럼 일어날 거야~시련아 덤벼라~힘들수록 내 미래는 빛이 날 거야~'

19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컴포트슈즈 1위 업체 안토니. 김원길(53·사진) 대표가 들려준 노래는 그가 직접 가사를 붙인 '힘들어도 괜찮아'다. 노랫말 구절구절마다 도전으로 가득 찼던 그의 50여년 인생이 녹아 있다. 그는 "대학강연이건, 군부대에서건 젊은 친구들에게 도전하는 인생을 살라고 조언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 대표는 제화업계에서도 드문 기능공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충남 당진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산에 있는 작은아버지 댁에서 구두기술을 배웠다. 18세 때 '구두장이를 한다면 최고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일자리를 찾느라 영등포 일대 양화점 수십 곳의 문을 두드렸다. 문래동의 작은 양화점에서 김 대표를 견습공으로 받아줬다. 쉴 새 없이 일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양화점 사장은 여름이 비수기여서 일감이 적다는 이유로 그를 내보냈다.

가을에 그는 다시 구두회사에 취직하는 기회를 얻었다. 구두장인의 솜씨는 그때부터 빛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잘나가는 구두회사였던 '케리부룩'은 납품 받은 제품의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그를 스카우트했다.

김 대표는 "머릿속은 언제나 구두기술만큼은 1등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앞두고 참가하기로 했던 직원이 사라지자 그가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김 대표는 "나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여성화 전문이었던 그는 남성화 부문에 나갔음에도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크게 낙담했지만 자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추억했다.

이후 김 대표의 삶은 더욱 치열해졌다. 생산직을 시작으로 관리직·영업직 등을 두루 거쳤다.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출근할 정도로 성실했다. 백화점 철수 위기도 당차게 넘기며 영업의 달인이 됐다.

1994년 항상 꿈꿔왔던 '사장'이 되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작은 구두회사를 차렸다. 초창기에는 탄탄대로였다. 케리부룩이 어려워지자 판권을 사서 회사를 키웠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가 시장에서 통하지 않고 빚만 쌓여갔다. 김 대표는 "차를 몰고 한강으로 돌진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문득 품질을 잊고 자금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난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지인으로부터 급전을 빌려 구두개발에 다시 매진한다. 이탈리아 컴포트화 브랜드 바이네르의 라이선스 계약도 따냈다.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자 회사는 성장을 이어갔다. 15년이 지난 2011년 마침내 김 대표는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Vainer)'를 인수한다. 신발 위탁생산 회사에서 브랜드를 인수하는 꿈같은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18세에 가방 하나 들고 상경해 자칭 '족(足)쟁이' 인생을 시작한 김 대표는 숱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안토니를 연 매출 500억원에 육박하는 제화 전문기업으로 만들었다. 전국에 60여개 매장을 두고 있는 안토니는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나아가 국내를 넘어 해외로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신고 싶어하는 구두,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면 저절로 외형적인 규모 역시 확대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10년 내에 바이네르가 세계 정상의 명품 상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가격경쟁력만을 너무 강조하면 직원과 매장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치경쟁력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옆에서 "굿모닝!"이라는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안토니 직원들은 "안녕하십니까"가 아닌 "굿모닝"이라고 인사한다. 그는 "부하직원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상사는 끄덕끄덕하는 봉건적인 인사를 타파하기 위해 세계의 모든 인사를 찾아본 끝에 매일 아침과 같은 기분이 들도록 '굿모닝'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어느 곳에서건 유쾌한 자리를 만드는 '행복전도사'다운 모습이다.

직원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복리후생도 대기업에 버금갈 정도로 만들어놓았다. 직원들이 휴일에 타도록 1억원 상당의 벤츠 스포츠카를 구입한 것은 물론 모터보트 6대와 말 2필을 마련했다. 김 대표는 여름에는 수상스키, 겨울에는 스키를 직접 직원들에게 가르치는 강사로 변신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직원들에게는 성공을 위한 자극제가 되는 이벤트인 셈"이라며 "행복한 직원이 좋은 구두를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성공은 무엇인가'라는 우문(愚問)을 던져봤다. 김 대표에게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내가 우선 행복해야 하고 사회에서 존경 받는 것이 제가 내린 성공의 정의"라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그의 집무실에는 '성공이란 고객에게 사랑 받고 사회로부터 존경 받으며 직원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지수 1등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훈이 걸려 있다. 성공은 돈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는 얘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숱한 어려움을 겪어서일까. 그는 베푸는 데 선수다. 김 대표를 상징하는 또 다른 단어는 '나눔'이다. 중소업계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하다. 그는 "돈은 쓰기 위해 벌지 쌓아놓기 위해 버는 게 아니다"라면서 "봉사활동은 중독성이 있고 오히려 베푸는 내가 즐겁다"고 설파했다.


대표적으로 매년 군생활을 잘하는 병사를 뽑아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멋있는 군인문화 만들기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현재까지 총 5회에 걸쳐 9사단(백마부대) 모범병사 10명이 유럽 연수를, 1사단(전진부대) 전진용사상을 받은 모범병사 4명이 호주 연수를 다녀왔다. 김 대표는 "선발기준은 선배를 공경하고 후배를 사랑하며 동료들과 전우애가 좋은 병사"라면서 "예전에 아들에게 했던 가르침을 병사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피력했다. 그는 군부대 특강뿐 아니라 배드민턴 라켓 세트, 탁구대 세트 등 생활체육용품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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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평소 "존경은 갖고 있는 것을 나눌 때 비로소 생기기 마련"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난해 말 홈쇼핑에서 7,000족을 '완판'해 나온 수익금 5,000만원을 모두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설립한 '중소기업 사랑나눔재단'에 기부했다.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기도 하다.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 10명의 멘토도 맡고 있다. 5월에는 지역 주민과 독거노인을 초대해 '효도잔치'를 연다. 회사 뒤 비닐하우스 2동에서 딴 고추를 수시로 주변인들에게 나눠준다. 지난해 사회공헌에 쓴 금액만도 6억5,000만원. 그는 "올해는 8억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출신의 프로골프 선수인 아들 김우현씨도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매 경기 버디를 할 때마다 5만원의 성금을 내놓고 있다.

도전·나눔·행복이라는 단어는 흔하지만 실제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가 인생경험을 담아 출간한 자서전 '멋진 인생을 원하면 불타는 구두를 신어라'는 스테디셀러다. "어려운 이웃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나눔 네트워크를 목표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는 김 대표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진=이호재기자

● 김원길 대표는

△1961년 당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1994년 안토니 설립 △2008년 국무총리 표창 △2010년 경기도지사 표창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 △2012년 철탑산업훈장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긍정의 에너지·승부사 근성 닮은꼴… 무르익는 부자의 월드 챔피언 꿈



아들 김우현 KPGA 2승


"200억원어치의 홍보 효과를 봤다고들 하십니다."

김원길 안토니 대표는 최근 자신의 회사가 후원하는 프로골프 선수가 주가를 올리면서 축하 전화를 받느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후원 선수는 다름 아닌 둘째 아들 김우현(23)이다.

김 대표를 이야기하면서 골프와 아들 우현을 빼놓을 수 없다. 김우현은 올해 2년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뛰는 신예다. 프로가 된 후 김우현은 안토니가 인수한 이탈리아 제화 브랜드 바이네르 로고를 모자에 붙이고 있다. 아버지가 스폰서인 셈이다.

계약금 4,000만원에 우승 때 상금의 30%를 보너스로 별도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도 작성했다. 김우현은 이달 열린 해피니스 송학건설 오픈과 보성CC 클래식에서 연속 우승하며 남자 골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승에 따른 보너스로 4,800만원의 지출이 생겼지만 김 대표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김우현은 사실 아버지의 승부근성(?) 때문에 골프채를 잡았다. 스포츠에 두루 관심이 많은 김 대표는 과거 부지런히 골프를 갈고 닦던 시절, 넘지 못할 벽을 만났다. 같은 연습장을 다니던 한 아마추어 고수와의 대결에서 번번이 지자 열정과 승부욕이 발동했다.

고수의 아들이 막 골프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여섯 살배기 우현을 숫제 골프선수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 김우현은 골프에 흥미를 보였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 유소년부 우승을 차지하는 등 착실히 성장해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지금은 내기 골프를 즐기는 친구 같은 골프 부자(父子)지만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김우현보다 4~5년은 늦게 골프를 시작한 동갑내기들이 먼저 두각을 나타내면서 중·고교 시절에는 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김 대표는 "우현이가 대학 진학 후 골프를 평생 할 건데 일희일비하면 안 되겠다고 깨달았다는 말을 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2010년 프로가 된 김우현은 지난해 KPGA 정규투어에 데뷔했고 35번째와 36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우승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를 안고 들어올렸다.

김우현은 김 대표의 긍정적인 생각과 승부사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두 번째 우승 직후 떨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물론 떨렸지만 누구나 대회 최종일 챔피언조에서 경기하면 떨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가장 최근 우승해본 내가 제일 유리할 거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는 8월21일부터 나흘간 KPGA 투어 대회인 바이네르 오픈(총상금 5억원)을 열 생각이다. 그는 "프로인 아들과 다른 선수들이 대회가 적어 그냥 놀 때가 많다"면서 "큰 회사는 아니지만 무리가 되더라도 남자 선수들을 한 대회라도 더 뛰게 해주고 싶다. 매출규모가 가장 작은 주최사가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대회는 각기 구두업계와 골프계에서 월드 챔피언을 꿈꾸는 부자에게 하나의 기념물이 될 듯싶다.

김 대표는 수준급의 아마추어 골퍼다. 베스트 스코어는 가장 뒤쪽인 챔피언 티잉그라운드 기준 3언더파 69타. 김우현은 우승한 두 대회에서 연속으로 적어낸 9언더파가 최소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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