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 촉진 등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가진 사전적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ISD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들은 ISD가 해외기업의 국내투자 촉진에 긍정적이라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ISD가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 시 리스크를 줄여주는 안전판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 FTA가 계속 정쟁의 도구로 활용될 경우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통해 확인된 정당 정치의 불신 현상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투자 촉진케 하는 사전 효과 주목해야=김병섭 외교안보연구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ISD가 사후적인 분쟁해결 절차이기도 하지만 국내에 투자하려는 해외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사전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ISD는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변화된 정책 등 때문에 이익을 침해 당했을 때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해당국을 제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후 분쟁 해결 제도다. 이 때문에 ISD는 해외에 투자를 하려는 외국 기업들로 하여금 개별 국가의 리스크로부터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어 외국인 투자를 더욱 촉진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또 미국의 국내 투자보다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가 10배 이상 많은 현재 상황에서 ISD는 오히려 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 6월 말 현재 미국의 국내 투자액은 11억1,000만달러에 그치는 반면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액은 125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ISD는 외국인 투자가로 하여금 해외에 투자를 할 때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해외 투자가 많은 우리나라로서는 오히려 요구해야 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ISD 절대 우위 없어=현재 ISD 폐기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미국이 세계은행을 좌지우지하고 있어 미국 기업이 국내 정부를 제소하면 우리 측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협상력이나 국제적 위상을 과소평가하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위상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국제 무대에서 우리가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주장은 패배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야당 측에서는 ISD를 '독소조항'이라고 하는데 이 의미는 미국에 비해 협상능력이나 견제력이 절대 열위에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며 "애플-삼성 분쟁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의 실무능력은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제기구에서 미국이 끼칠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병섭 부장은 "이번 ISD 문제와 관련해 비슷한 게 세계무역기구(WTO) 무역분쟁 패널인데 이 패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에 유리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예가 많다"며 "WTO 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ISD에서도 우리나라가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송영관 연구위원은 "미국 스스로도 ISD가 자국의 사법 주권을 해칠 수 있다는 염려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ISD 제도가 꼭 우리나라에만 불리한 문제는 아니다"라며 "미국이 ISD 제도를 제국주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치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정쟁 수단 돼서는 안 돼=전문가들은 한미 FTA를 둘러싼 최근 논란이 FTA 자체의 효용성을 따지기보다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정쟁이 지속될 경우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드러난 정당 정치 불신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황인상 P&C정책연구소 대표는 "야당의 경우 한미 FTA를 범야권 대통합의 정책적 기준선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민주노동당 등 다른 정당이 FTA를 적극 반대하고 있어 (대통합을 추진 중인) 민주당으로서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여당의 경우 협상력의 빈곤이, 야당은 장외정치의 압력을 너무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여야가 유권자들의 경고를 들은 지 일주일도 안 돼 또 타협과 조정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