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철학자(공자)의 도덕체계는 무한히 숭고하면서 동시에 간단하고 이해하기가 쉽다. 자연적 이성의 가장 순수한 원천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성이 신적 계시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이토록 잘 전개되고 이토록 강력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지난 1687년에 소개돼 중국을 유럽인의 관심 대상으로 만든 획기적인 유교 경전 번역서인 '중국 철학자 공자 또는 중국 학문'의 서문을 통해 필립 구플레 등 4명의 예수회 선교사는 이같이 말했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유럽에 소개된 공자 철학이 유럽의 사상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언급하는 유럽의 사상가들의 삶의 궤적과 이들이 미친 영향을 추적하다 보면, 독자들은 공자 철학을 만나게 된다.
30년 종교전쟁이 끝난 17세기 중반 유럽의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달랐다. 살벌했던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으로 인해 유럽인들은 사분오열됐고, 정신적 상처는 깊었다. 이에 따라 기독교 신앙은 크게 약화되고 종교적 회의주의는 깊어졌다.
바로 이때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한 중국의 예술과 철학, 특히 공자철학은 새로운 사상적 관심의 표적으로 부상하게 된다.
공자 철학의 충격은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 프랑스에서 강력했다.
프랑스인들은 자국 내 종교갈등으로 자기 문화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 사상가들은 동양을 묘사할때 보다 초연하고 개방적인 접근법을 택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열띤 사상논쟁은 유럽 철학을 근대화하고 각국에서 계몽주의의 투지를 복돋우는 역할을 한다.
계몽주의에 불을 지핀 볼테르는 그리스 철학자들을 공자와 나란히 인용하지도 않을 정도로 공자를 숭배했다. 그는 '국민의 도덕과 정신에 관한 평론'의 서론에서부터 공자를 언급하며 사람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요약해서 전하고 공자의 법을 따랐던 시대를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시대'로 평가한다.
볼테르를 비롯한 당대 프랑스 지식인들은 공자철학을 무기로 기독교적 몽매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그리스철학과 스콜라철학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공자의 철학인 측은지심과 동고동락의 공감감정론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유럽의 정신을 개화시켜 나간다.
이에 따라 18세기 말까지도 마녀사냥을 계속하던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은 점차 세속화되고 유럽의 정신도 점차 탈종교화된다.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중농주의 자유경제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프랑수아 케네 역시 공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케네의 사상은 '농업은 국부의 원천'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경제표 ' 의 사상적 모태는 공자의 민본주의, 농본부의, 자유상업론이었다. 저자는 볼테르가 공자의 철학을 수용해 유럽 고유의 혁명적 계몽철학을 창시했다면, 케네는 경제학 분야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제도와 공자의 철학을 받아들여 근대의 혁명적 정치경제학을 창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영국 역시 공자 철학을 조용히 그러나 절실하게 긍정했다. 공자철학의 경험론과 덕성주의는 영국 경험론의 결정적 응원군이 됐고,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등의 철학 속에 고스란히 스며 들었다.
흄은 거대한 영토와 엄청난 인구를 가진 중국을 보면서 민주정은 소국보다 오히려 대국에 적합하다고 판단, 1752년 '완벽한 공화국의 이념'이라는 글을 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은 1787년 12월 8일 발표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제19호'에서 흄의 글을 직접 인용하며 미국 헌정은 권력분립적 민주정이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민주국가 미국의 탄생에도 공자의 영향이 있었던 셈이다.
국부론으로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역시 스미스 본인이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공자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공자의 경제철학을 계승한 사마천은 생산, 유통, 분배는 인간의 본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백성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서 국가의 개입 없이 자연적 가격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절된다고 말했다.
저자는 공자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유럽의 사상 흐름을 살펴보는데 그치지 않고 현 시점에서 공자 철학의 의미를 되새긴다. 사마천의 경우 산업진흥과 복지정책에 대한 고려 없이 자유시장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유시장과 복지국가를 하나로 결합한 공자 부민경제학에서 일탈했고, 마찬가지로 공자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스미스 역시 복지 없는 야경국가론으로 일탈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사상계가 공자철학을 버리고 합리주의 철학으로 회귀한 결과 독재와 전쟁 속에서 무수한 인명이 살상되고, 자연이 훼손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공자의 철학이 인류의 삶을 디자인할 확실한 대안철학이라고 강조한다. 1만4,800원